“지진 예측 보고서 상부서 묵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의 피해가 큰 것은 ‘과거 잘못의 반복이 낳은 참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야 지진학자들의 쓴소리다. 파장이 우려되는 내용인 만큼 이 주장은 제기된 직후 전달이 차단됐다.

민간연구조직인 지구물리학회 천재예측위원회 고문인 천이원(陳一文) 박사는 29일 해외 언론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 지진국이 쓰촨 대지진에 대한 사전 경고를 내려 달라는 지방 지진 전문가들의 건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한 뒤 “내가 직접 지진 경보 보고서를 국가지진국에 알린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천 박사는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의 영문 비서와 국민당 정부의 외무장관을 지냈던 천유런(陳友仁)의 손자다.

천 박사에 따르면 대지진 발생 직전 쓰촨성 아바 주 원촨(文川)현 내에서 언덕 붕괴 사건이 발생해 주민 몇 명이 죽거나 다치자 현 정부는 지질 변동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경고를 발동한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 이웃 간쑤(甘肅)성의 지진연구원도 4월 “간쑤성 란저우(蘭州) 이남 지역과 쓰촨 서부, 칭하이(靑海)성 동부 지역에 규모 7.2 이상의 대형 지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두 문건을 천 박사가 모두 정리해 국가지진국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지진국이 ‘지진발생 전 어떤 지진 경보 보고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발표한 것은 거짓이며, 미리 대처했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다른 지진학자들도 “국가지진국의 이 같은 태도는 1976년 발생한 탕산(唐山) 대지진과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최초 발생 상황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탕산 대지진의 경우 지진 발생 전 현지 지진연구회가 지진 발생 조짐을 알리는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국가지진국은 묵살했다. 지방지진국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스 발생 당시 위생부 부장과 휘하 핵심 간부들은 모두 상하이(上海) 출신이었다.

이들은 똘똘 뭉쳐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차단했는데, 현재 국가지진국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천젠민(陳建民) 지진국장과 3개 부국장이 모두 베이징대 동문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단합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를 차단했다는 것이 재야 지진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한 보도를 차단했다는 점이라고 지진학자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네티즌을 중심으로 국가지진국의 거짓과 중국 정부의 은폐 의도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계속 이 일을 덮어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