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 돌아간 가자 연료 없어 당나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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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연료가 없어 택시 대신 당나귀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집집마다 길거리에서 주운 쓰레기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든다. 마치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심각한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는 가자 지구의 풍경이다. 현지에서 구호단체 옥스팜의 요원으로 활동 중인 오마르가 29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방송의 웹사이트에 올린 내용이다. 반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펼쳐온 이슬람단체 하마스가 지난해 6월 가자 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대한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반발한 하마스가 최근 몇 달간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로켓 공격을 퍼붓자 이스라엘은 봉쇄 강도를 한층 더 높였다.

이에 따라 요즘 가자 지구에선 사람들이 자동차에 휘발유 대용으로 폐식용유를 넣는다고 한다. 연료 부족으로 수거 트럭이 운행을 중단해 거리엔 쓰레기가 넘친다. 이 쓰레기를 연료로 식사 준비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조리가 가능한 쌀을 많이 먹는다. 원래 이곳 사람들의 주식은 빵이지만 오븐을 가열할 가스와 밀가루가 없어 빵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전깃불도, 양초도, 램프용 가스도 없어 아이들은 시험을 앞두고도 공부를 할 수 없다. 의료 서비스도 기대하기 힘들어 중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여권이 있는 경우 간혹 신병 치료를 위해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가는 게 허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마르도 막내딸을 위한 여권을 신청했으나, 여권을 인쇄할 종이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발급을 거부당했다.

이와 관련, 알자지라 방송은 29일 가자 지구를 방문 중인 데스몬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주교가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이 가자 주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봉쇄 해제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하마스 임시 정부를 이끄는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를 만나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 공격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투투 주교는 유엔 사절 자격으로 2006년 11월 이스라엘 군의 포격으로 가자 지구의 베이트 하눈에서 어린이 8명 등 민간인 19명이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이날 아리에 메켈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봉쇄 조치의 책임은 하마스에게 있다”면서 “가자 지구로부터의 공격이 중단되면 국경은 열리고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투투 주교의 방문을 환영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관장하는 이번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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