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인의 숨은 학교돕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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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직 대통령 비자금 파문으로 기업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한 기업인이 10년동안 남몰래 사재 70여억원을 털어 한지방 공립고교의 교육여건 개선에 헌신해 온 사실이 밝혀져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서초구서초동에 본사를 둔 운송업체 ㈜승산의 허완구(許完九.59)회장.
10년간 경남진주시 진주여고(교장 김동렬)의 교육시설을 완전탈바꿈시키는 사업을 묵묵히 벌여 오는 25일 최종 완공을 앞두고 있다.
3단계로 진행된 이 사업은 1단계(87~88년)로 생활관(395평).교장사택(37평).야외소극장(184평)을 지은데 이어2단계(90~91년)로 일제때 지어진 낡은 목조 건물을 헐어내고 적벽돌로 된 현대식 본관 건물과 지상3,4층 의 교사(校舍) 2개동을 신축했다.
마지막 단계(94~95년)로 체육관 겸 강당(472평).운동장(2,087평).테니스코트를 새로 만들고 교정 뒤편에 2,042평 규모의 잔디광장.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학교 전체 조경공사를 마무리했다.
『학교측에 시설개선에 필요한 재원만 제공하고 말 수도 있었지만 학교를 완전히 새로 짓는다는 생각으로 마스터플랜을 마련,설계.시공.감리를 직접 수행해 왔습니다.』 이런만큼 새 모습으로탈바꿈한 학교 구석구석엔 許회장의 애착과 정성이 묻어있지 않은곳이 없다.
『86년부터 사업상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스탠퍼드대 등 20여개 유명 대학과 고교를 둘러보며 자료를 수집해 설계에 반영했습니다.창틀의 형태를 아치형으로 한 것이나 건물 배치형태 등이그 예지요.』 2주일마다 현장에 내려가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챙겼던 許회장은 특히 여학생들의 심성을 감안해 녹지공간 확보에많은 신경을 썼다.자신이 직접 키우고 아껴온 서울성북동 자택 정원수들도 학생들이 보는게 낫다 싶어 학교에 옮겨 심었다.
許회장이 이처럼 진주여고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1925년 許회장의 선친(許萬正)이 사재를 털어 일신(一新)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으나 39년 일제에 의해강제로 진주공립고등여학교로 개편돼 지금의 진주여 고로 이어지고있기 때문.
『진주여고를 제대로 된 학교로 키우는 것이 일신학교를 설립한선친의 유지를 받들고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許회장이 진주여고에 쏟는 정성은 이것만이 아니다.자신이 지어준생활관의 유지관리비와 학생들이 매년 1주일씩 의무적으로 받게 되는 생활관 입주교육비로 매년 1,000만원을 지원한다.공립학교 예산으로는 생활관 운영이 여의치 않기 때문 이다.
또 연간 30명의 학생에게 학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교사의 질 향상을 위해 매년 교사 5명씩을 일본에 연수보낸다.
25일 진주여고에서는 체육관겸 강당의 준공식을 겸한 기증식이거행되며 학교측이 감사의 표시로 제작한 許회장 선친의 흉상도 제막한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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