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교육·경찰권 지방에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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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전국회의’.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지방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라”며 ‘결연한 의지’ ‘단호한 행동’ 등 격앙된 단어가 터져 나왔다. 혁신도시 재검토 등 현 정부의 지방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지만 진전 없는 지방 분권에 대한 성토이기도 했다.

1995년 지방단체장 선거로 실질적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지 13년이 됐다. 하지만 자치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없는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정부가 대부분의 권한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어 지방은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게 지방의 인식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의 발전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권력 배분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방이 행정·재정·치안·교육 등의 권한을 갖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진정한 분권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지방 분권을 위한 개헌을 고려하자”고 주장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 분권을 명문화함으로써 국가 체제를 개편하자는 뜻이다. 새 헌법에는 국가와 지방정부 간에 입법·행정·재정 권한을 배분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지방 참여를 제도화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시도지사협의회의 주장이다.

지방 분권은 수도권 대 지방의 소모적 논쟁을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지방 분권은 ‘글로컬(글로벌+로컬) 시대’에서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지방 도시가 세계의 다른 도시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중앙 집권형 국가운영 체제는 한계가 있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지방 분권은 좁게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시장과 지역사회에 넘겨주는 국가의 재구조화 사업”이라고 말한다.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통치에서 협치(協治)로 바뀌는 거대한 실험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균형발전을 주창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균형발전을 수도권 대 지방의 대결 구도로 보고 기계적 ‘분산’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178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통한 혁신도시 건설 방안은 태산을 무너뜨려 티끌을 만드는 격”이라며 “(이런 것보다는) 과감한 지방 분권을 통해 지방이 살길을 스스로 찾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방 분권이 성공하려면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영역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방재정 확충이나 자치경찰 창설, 특별행정기관 이양 등이 논의됐지만 제대로 결실을 거둔 것은 없다. 한표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기획관리실장은 “지방 분권은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라며 “대통령과 국회가 공감대를 이뤄 임기 초에 가시적 틀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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