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산으로 도망친 호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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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 세 돌 9단 ●·후야오위 9단

장면도(155∼170)=155로 즉시 패를 걸어놓고 159로 젖힌다. 귀의 패는 워낙 커서 백은 부리나케 160으로 해소한다. 그때 161로 넘자 백△들이 다 잡혔다. 흑의 대성공일 텐데 서봉수 9단은 “허어” 하며 혀를 차고 있다. 이미 보여준 ‘참고도’의 수순 외에도 흑엔 온갖 옵션이 있었는데 후야오위 8단은 너무 최소한의 권리만 행사했다. 그것이 승부사의 직감으로 불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흑은 충분히 유리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흑은 귀까지 몽땅 잡고 바둑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아무리 유리해도 끝난 것은 아니다.” 이세돌이란 호랑이가 산으로 도망갔으니 뒷일이 걱정 아니냐는 뉘앙스다.

후야오위는 왜 목을 칠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말았을까. 거기에 구경꾼과 대국자의 차이가 있다. 훈수는 대국의 고통, 불안, 욕망에서 자유롭기에 어느 한 지점, 한 부분을 명쾌하게 집어낼 수 있다. 대국자에겐 자기만의 긴 스토리가 있으며 끝까지 안전하게 승리를 지켜야 한다는 최종의 목표가 있다. 서봉수 9단 역시 그 점을 잘 알기에 더 이상의 지적은 생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6, 168은 아프다. ‘참고도’ 흑1만이라도 선수해 뒀더라면 이런 수순은 존재할 수 없는 것. 목숨을 부지한 이세돌 9단이 170부터 재기에 나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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