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씽크대부터 돌립시다"차옥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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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그런데 여성학을 강의하는 차옥덕(車玉德.44)씨는 다음같이 바꾸자고 제안한다.『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야 집안도 살린다』고. 車씨는 한양대.인천대등 대학 네곳에 보따리짐을 들고 다니는 시간강사.그의 강의를 찾는 학생이 한학기에 700명이나 된다.하지만 강사 10년에 「전임」하나 낚지 못한 그가 지난 체험을 선언적으로 압축한 『씽크대부터 돌립시다』(여성사 )를 내놓았다.
대학을 마치자마자 홀어머니와 시누이 3명을 둔 외아들과 신방을 차리고,또 결혼 9년만에 대학원에 입학.졸업한후 강사 10년만에 펴낸 책답게 독자들에게 던지는 車씨의 선언은 제법 매섭다. 『21세기에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남성에게 가사노동은 필수과목입니다.아내를 돕는다는 시혜가 아니라 남성도 가사를 균분(均分)해야 한다는 말이지요.이를 거부하면 가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정을 지 키는 여성은 더이상 없기 때문이지요.』 車씨의 강도높은 발언 뒤에는 그의 경험이 그대로 스며 있다.책제목 『씽크대부터…』도 3년전부터 실천해온 일이다.주부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싱크대가 벽쪽으로 나있어 조리.설거지때 주부들이 가족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 모순 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싱크대를 거실쪽으로90도 돌렸다.나물을 헹구면서도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싱크대 돌리는 일은 출발에 불과하다.車씨는 곳곳에뿌리깊게 남은 남성.여성의 고정관념을 떨쳐내기 위해 무장한다.
『담배 한개비는 마누라하고도 안 바꾼다』는 속담을 『적금통장은남편하고도 안바꾼다』는 식으로 바꾸는가 하면 심청 전.신데렐라등 동서양 동화주인공도 남자로 대체,성(性)을 둘러싼 기존의 역할분담을 파기할 것을 외친다.특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언어문제에 주목,주부(主婦)라는 말에 주부(主夫)를 합쳐 주부부(主婦夫)로 쓰거나 혹은 나아가 주가족 (主家族)이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車씨의 책에는 이같이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 실천하는 남녀평등의 방안이 가득 넘친다.그는 이를 「실사구시의 여성학」이라고명명한다.현실의 실천이 없는 구호는 자칫 말장난에 그친다는 위기의식이다.운동의 실천도 자기집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車씨의 주장은 급진적 여성운동과는 길이 다르다.무엇보다 가정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있다.『여성학을 처음 접할 때 솔직히 가족이부담스러웠어요.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남성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여성과 남성은 적대가 아닌 함께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요.』 車씨는 심지어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면지금쯤 이혼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가정과 사회에 똑같은 비중을 둔다고나 할까.이때문에 다른 학자로부터 보수 혹은 개량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평등한 위치에 있는 남녀의 사랑과 교감이 오가는 가정 없이는어떤 주의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이다.또한 그는 『학생들,특히 남학생들의 의식이 하루하루 달라질 때 삶의 의미를 느낀다』고 말했다.그러나 그가 말하는 21세기의 평등한 남녀 관계를 달성하는 일은 모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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