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전직대통령 예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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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재작년 3월 미국 뉴욕의 포브스 매거진 갤러리에선 「대통령들에 관한 대통령들의 의견:정상(頂上)비평」이란 제목의 이색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전직대통령들이 후임대통령들을 헐뜯는내용이 담긴 문서들이 전시된 것이다.전시된 문서 들은 대개 전직대통령이 친지등 제3자에게 보낸 편지 따위였다.트루먼은 닉슨을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라고 혹평했고,존 애덤스는 토머스 제퍼슨을 「있을 수 있는 모든 악당들에게 명예와 봉급을 줬다」고 비난했는가 하면,제퍼슨은 앤드루 잭슨을 가리켜 「대통령직에가장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비방당한 후임대통령들에게 그같은 흠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차치하고 이 전시회는 관람한 사람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재임중 사망했거나,닉슨처럼 중도에 물러났거나,재직중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한 대개의 전직대통령은 존경의 대상이 되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그같은 헐뜯기는 존경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소설가 존 업다이크는 『미국의 대통령직이란 전직대통령이 되는 축복받은 신분으로 통하는 중간역에 불과하다』고 쓴 적이 있거니와 존경은 존경대로 받고 「전직대통령 예우법」으로 안락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미국의 전직대통령이야말로 「축 복받은 신분」임에 틀림없다.퇴임후 생계가 어려웠던 트루먼때문에 58년 제정됐다고는 하지만 전직대통령예우법의 배경엔 재임중의 부패방지,노고에 대한 치하,국민의 존경심 따위가 골고루 자리하고 있을것이다. 전직대통령의 신분과 예우를 규정한 우리나라의 헌법 제85조도 제정취지는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존경은 커녕 재임중의 온갖 행악(行惡)으로 자리를 더럽힌 「전직」에게까지 예우를 베푸는 데는 이론(異論)이 많다.이번 한 변호사가 「금고(禁錮)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헌법상의 평등권.행복추구권등을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헌재(憲裁)에 헌법소원을 냈다.미국에서도 재벌급 전직대통령들을 예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제기되는 모양인데 정말 국민에게 존경받는 전직대통령에게나 혜택을 주는 것이 법의 취지를 살리는 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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