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7조원 몰린 시티파크의 그림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금융.세제 대책 등을 망라한 고단위 처방인 '10.29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오늘로 5개월이 된다. 이 대책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주 25만명이 7조원을 동원한 서울 용산구 시티파크의 청약 과열사태는 부동자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부동산 투기 대책이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시티파크의 청약 과열은 당첨되면 상당한 웃돈이 예상되는 데다 분양권을 한 차례 전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일 뿐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분양권 전매에 대한 세금을 철저히 매기고 불법 전매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10.29 대책 이후에도 고속철 역세권의 땅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등 적지 않은 곳에서 국지적인 투기 바람이 여전했다. 이는 시중에 넘쳐나는 돈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 만기 6개월 미만의 단기 예금 형태로 잠복하고 있는 돈이 380조원에 이른다. 이 자금이 모두 부동자금은 아니지만 이 중 몇십조원은 틈만 생기면 제2, 제3의 시티파크로 몰려가 경제를 불안하게 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시티파크 청약 자금 중 상당 규모는 마이너스 통장대출 등 은행 대출인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든지 투기자금화할 수 있는 예비 부동자금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시중 자금이 이처럼 투기용으로 떠돌아다니는 상황에서는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중에 떠도는 돈을 건전한 생산과 소비로 유인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시중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여 생산자금화하기 위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일정 수준의 기대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시중 자금을 흡수해 불안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시티파크와 같은 투기판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기면서 동시에 부동자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