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먼삭스 탈락이 남긴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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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30면

산업은행은 18일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 골드먼삭스의 대우조선해양 매각 주간 우선협상자 자격을 취소했다. 이틀 뒤인 20일엔 스스로 단독 주간사를 맡겠다고 발표했다. “골드먼삭스의 중국 조선사 지분이 이해상충 우려를 낳음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일체의 책임을 진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산은의 설명이다.

이런 태도는 처음과는 전혀 달라진 것이다. 산은은 지난달 말 골드먼삭스의 중국 지분 보유가 처음 알려진 뒤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중국 조선업에 투자하지 않은 투자은행(IB)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설명도 했다. 하지만 14일 “이해상충 문제를 명시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 자문사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방산 기술이나 조선 기술 유출 논란에 대한 부담을 골드먼삭스에 떠넘긴다는 해석이 돌았다.

골드먼삭스에 요구한 내용도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크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골드먼삭스가 지분을 갖고 있는 중국 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고의나 과실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보상하며, 대우조선 매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모든 자문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골드먼삭스는 “할 수 있는 것은 해보겠다”며 “내부 검토에 필요한 시간을 더 달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 조선사로부터 입찰 포기 각서를 받아주거나 산은 관계자가 직접 불참 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면담을 주선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산은은 약속한 날짜까지 확답을 하지 않았다며 골드먼삭스가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간주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한 시간이 걸릴 수학 문제를 내놓고 10분 만에 답안지를 받아간 격”이라며 “같은 조건으로 제안을 받은 다른 후보자들이 모두 난색을 표한 걸 보면 지나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산은의 입장이 어려웠던 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여론이나 민영화 압력이 산은엔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단독 주간사가 된 산은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됐다. 이해상충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산은은 현재 대우조선 인수를 희망하는 두산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지분 12.53%와 두산엔진 지분 17% 등이다. 또 다른 후보인 STX그룹 계열사 주식도 상당량 갖고 있다. 골드먼삭스에 들이댄 기준대로라면 산은도 주간사론 부적절하다. 어렵다고 피해 가면 일이 더 꼬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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