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부패의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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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비資金)사건을 전하면서 외국의 언론들은 「비자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놓고 적잖게 부심했다.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이라는 이른바 「통치자금」은 선진 민주국가에선 그 유례가 없다.클린턴 미국대통령 이 할리우드의 이용사를 대통령 전용기 안으로 불러 200달러짜리 이발을 했다 해서 언론들로부터 혼쭐이 난 판이다.이 비자금은 영어로 「slush fund」로 번역되고 있다.「slush」는 「끈적거리고 더럽다」는 스웨덴어 「slask 」에서 유래한다.함상에서 기름을 빼내 팔아 개인용품을 조달한 일부 해군의 탈선행위를꼬집은 말이다.끈끈하게 뒤엉켜 계산이 명확치 않은 속성을 지닌다.1866년 「가까운 사업가나 후견인이 선거운동때 슬며시 대주는 불법적 뒷돈」이란 의 미로 미국 정가에서 처음 쓰였다.1952년 상원의원시절 닉슨은 후원자들로부터 거둬들인 「닉슨 펀드」로 곤욕을 치렀다.
盧전대통령의 비자금은 바깥사회에 2중의 충격이다.「천문학적 규모」에다 돈을 바친 큰손들이 대부분 대기업 그룹들이란 점이다.이권이나 수의계약등 조건부 수수(授受)보다 「인사로 갖다 바쳐야 하고,또 갖다 바칠 수밖에 없는 한국적 체제 」에 거듭 놀란다.「제왕(帝王)적 대통령」아래의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가 심어놓은 부패의 뿌리다.직위와 직책을 이용한 사취(私取)가 구조적인 상황에서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 혼자 『나만은 돈을 받지않는다』고 거듭 외친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한다.93년 페르난도 멜로 브라질대통령의 탄핵축출이 이를 시사한다.
멜로는 90년 전임대통령 주세 사르네이의 부패에 항거해 대통령이 됐다.그러나 취임 34개월만에 더 큰 부패로 탄핵을 받았다.비자금 액수는 3억3,000만달러(2,600억원 상당)였다.예산실장집 침대 밑에서 현금 140만달러가 적발 되고 각료.
국회의원.지사등 수십명이 얽히고 설킨 부패의 덩굴 속에 그도 말려들었다.
60,70년대의 군사쿠데타-80년대 민주화및 경제개혁-90년대 깨끗한 정부가 남미국가들의 발전 도식(圖式)이다.그러나 부패의 쳇바퀴로 이 3단계에서 많은 나라가 계속 겉돈다.한국 역시 같은 범주다.세계화와 일류화라는 구호가 부끄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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