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워치] 한국인 10만 명 ‘리틀 코리아’ 예부터 중국 진출 전초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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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산둥성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18만 명. 이 중 칭다오에 약 10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웨이하이(威海)에 4만 명, 옌타이(烟臺)에 3만 명이 주재하고 있다. 약 1만 개에 달하는 산둥성 투자기업 중 6000여 개가 칭다오 주변에 몰려 있다. 중국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산둥성 누적 투자액(실제투자 기준)은 233억2000만 달러로 산둥성 전체 투자액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는 또 한국의 대중국 투자액의 약 60.4%에 해당한다.

한국과 산둥성의 지리적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주당 약 150회의 항공기가 칭다오·옌타이·웨이하이 등 산둥성 도시와 한국의 인천·부산 등을 오가고 있다. 칭다오~인천의 경우 주당 70회, 하루 평균 10편이 운행된다. 또 주당 24회의 해상 여객선이 한국 서해안과 산둥성을 운항하고 있다.

중국 산둥성은 역사적으로도 한반도의 중국 진출 창구였다. 당(唐)나라 때 고구려 유민이었던 이정기 장군이 둥지를 틀었던 곳이 산둥성이었다. 장보고 역시 산둥성 룽청(榮城)시 츠산(赤山)진의 신라방을 기반으로 해적 소탕 및 항해, 교역 확보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곳에 세워졌던 불교사원 ‘법화원’은 당시 신라인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칭다오 소속 현급 도시인 자오저우(膠州)는 북송(北宋)과 거래하던 고려상인들이 몰렸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을 통해 북송의 수도 개봉으로 갔다는 ‘고려정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더 멀리는 진시황의 불로초 채취 명을 받은 서복(徐福)이 선단을 이끌고 한국과 일본으로 떠났다는 곳이 바로 칭다오였다. 칭다오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에 떨어져 있는 랑야타이(琅王邪臺)에는 서복의 한국행을 기념하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칭다오 시정부는 이곳을 ‘한·중·일 고대교류의 상징처’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칭다오 방문은 고대 한반도와 산둥성 교류를 복원하는 한편 양측 간 교류 확대와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칭다오=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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