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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동산實名制 숨은돈 어디로 옮겨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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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거대한 돈 몰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경제적 측면에서 본 해석이다.사회적으로는「법적.도덕적 씻김 굿」,정치적으로는「과거청산」이 바로 盧씨 사건이지만 그같은 일이 가능한 토양(土壤)은 역시 금융실명제에 의한「거대한 돈 몰이」다.
금융.부동산 실명제의 양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은 돈들의 은신처를 서서히,그러나 엄정히 죄어 가고 있다.
盧씨 사건은 그 과정에서 얻은 큰 부산물(副産物)이다.하지만사회적인 씻김 굿이나 정치적인 과거 청산이 경제에까지 타격을 주도록 돈 몰이에 취한다면 더 큰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실명제의 진정한 목적은 숨은 돈들을 한치 한치 죄어 가는 한편 돈 임자들을 달래고 어르기도 하면서 양지(陽地)로 끌어내 떳떳이 증식(增殖)하도록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또 경제란 윽박질러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가 盧씨 사건과 같은 전리품(戰利品)을 다루고 있을 때 경제는 앞으로의「돈 몰이」가 어떠해야 할지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금융실명제의 현명한 완성을 위해서.
실명제에 쫓기고 있는 숨은 돈들은 어디로 옮겨갈 수 있을까.
더욱이 내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뭉칫돈의 운신 폭은 한층 좁아진다.우선 해외.주식.채권.부동산등 여러가지 새로운 은신처를 생각해 볼 수 있다.그러나 어느 곳에도 또 다른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다.여기에 전주(錢主)들의 고민이 있다.
◇부동산으로 갈까=마땅한 투자대상이 없는 현 여건상 그래도 부동산을 선호할 것이란 시각이 강하다.최근 유망 개발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미분양 아파트도 감소하는등 부동산경기가 서서히 살아날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이라도 투기조짐이 보일 경우 즉각 부동산거래자에 대한 자금출처등을 벌일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어 과거와 같은 저인망식 투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더욱이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감시망이 맞물릴 경우 투자자의 자금흐름을 손금보듯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설령 값이 올라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세금으로 날아가 수익성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반면 당국의 눈길이 부 드러운 주택시장에는 돈이 대거 흘러들 소지가 많다.
특히 요즘 인기높은 10억원대 이상 대형 고급주택이나 별장용전원주택은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못한다면 보다 안전한 주택을 통해 재산도키우고 자식들에게 유산의 계기도 마련하겠다는 투자심리가 일어날것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빼돌릴 수 있을까=출국할 때 한사람이 「여행경비」조로 가져갈 수 있는 한도는 미화 1만 달러.여기에 체류기간에 따라 체제비등 실비를 추가로 갖고 갈 수 있는 정도다.출국할 때마다 1만달러씩 갖고 나간다 해도 큰 돈을 빼돌 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큰 돈을 한꺼번에 해외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송금이다.하지만 기업간의 결제대금등 실제 거래를 끼지 않는 송금은 1만달러를 넘으면 증여로 간주돼 국세청에 통보된다.
이에 따라 종종▶기업과 짜고 수출.입 단가를 조작해 빼돌리거나▶해외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경비를 보내거나▶미군(美軍)을 통해 송금하는 방법등 법을 어기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하지만이는 대다수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다. 또 한 가지,해외에는 국내에 비해 투자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금리도 국내보다 훨씬 낮은데다 주식.부동산등 실물자산은 가치가 하락할 위험성이 높아 잘못하면 본전도 못건진다.더구나 대부분의 경우 외국엔 우리보다 훨씬 더 엄격한 실명 제가 기다리고 있다.
◇주식.채권으로 이동하지 않을까=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뭉칫돈이 주식.채권쪽으로 가주면 오히려 고맙다.특히 종합과세가 시행돼도 주식.채권의 매매차익은 비과세되므로 실제로 큰 돈이 옮겨갈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주식은 상당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또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주식시장 흐름에 늘 귀를 열어둬야 한다.신경을 잔뜩 써야 한다는 얘기다.따라서 큰 돈이 오랫동안 은신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채권쪽은 주식보다 뭉칫돈이 아예 둥지를 틀고 들어앉을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채권의 경우에도 보유기간의 이자에 대해 종합과세가 따라붙는다.또 주식처럼 매매 차익을 얻으려면 이 역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뭉칫돈이 갈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역시 이자 분리과세를 택할 수 있는 5년 이상 장기채다.아닌게 아니라 장기채는 이미 지난 봄부터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아직 장기채 물량이 워낙 적어 큰 돈을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지만 정부도 장기채 발행을 크게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두고 볼 일이다.
◇다른 실물자산으로 이동하지 않을까=부동산을 제외하면 투자할만한 실물자산이 그리 마땅치 않다.그림.골동품등이 있지만 큰 돈들이 너도 나도 파고들만한 여지는 별로 없다.그림.골동품은 보관하는데도 품이 들고 금융자산에 비해 현금으로 바꾸는데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더욱이 그림.골동품등의 매매 차익에도 내년부터는 종합과세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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