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협상 파장 … 해법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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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합의문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 협상이 가능하며 필요하다.” “광우병 발생 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한 (수입 중단 등)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토록 애써야 한다.”

16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한국협상학회(회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주최로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에 관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토론회에서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면서도 “이번 협상의 문제점은 쇠고기 수입월령 제한을 철폐한 대신 효과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토론자들 사이에 도출된 주요 합의 사안과 관련 토론 요약.

# 결론 1=“비록 안전성에 관한 논란은 남아 있으나 국제법에 의거해 한국이 준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인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양국이 협상을 타결한 것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국민적 요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협상에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토론)=OIE 기준에 의한 협상 타결 내용의 타당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선 OIE 외에 다른 기준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소에서 SRM을 제외한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점에 관해선 위생검역조건 개정을 위한 미·일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일본도 OIE 기준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결론 2=“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하는 경우 우리나라가 WTO 위생 및 검역 협정에 따라 수입 금지 등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OIE의 평가 결과 이후로 유보한다는 내용을 의정서에 포함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토론)=광우병 재발 시 수입 금지를 하기 위해선 OIE의 판정이 필요하다는 합의는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대세였다. WTO 규정에 의하면 광우병 같은 중대 사안의 경우 OIE의 판정과 관계 없이 수입 금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굳이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서 OIE 판정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삽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재발 시 OIE의 판정과 관계 없이 즉시 수입을 금지해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그 경우 국제법 위반은 아니지만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될 것이므로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 결론 3=“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않고 정치일정에 맞춰 협상을 시급히 타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의 협상력이 크게 약화됐다. 급박한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의 사료 강화 조치, 한국 측의 쇠고기 수입 중단 요건 등에 관해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토론)=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협상 시점이 선택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돼 우리 측의 협상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시점 선택에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미국에선 쇠고기 문제 해결 없이 이 대통령이 미국에 올 필요 없다는 강경론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미에서는 쇠고기 협상 타결에 적극 노력한다는 진전된 원론을 밝히고 방미 후에 협상을 시작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대세였다. 방미 후 쇠고기 협상과 우리 국회의 FTA 비준을 같이 추진해 미국 의회에 압력을 넣어야 했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 결론 4=“쇠고기 문제에 대한 국내적 민감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협상 결과를 신속·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에 대해 초기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이의 확산을 방치해 반대여론에 이끌려 간 것은 잘못이다.”

# 결론 5=“재협상은 현실성이 낮으나 현재의 합의문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 협상은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

(토론)=재협상이란 지금의 합의안을 부정하고 원점부터 다시 협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가 서명까지 한 지금 재협상은 거의 불가능하며, 또 재협상을 제기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이 상황에서 재협상을 제기하는 것은 한·미 간의 신뢰만 손상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추가 협상은 가능하며 필요하다는 데에는 거의 모든 참석자가 공감했다. 추가 협상이란 현재의 합의안을 인정하면서 추가적인 문구를 삽입해 기존의 독소 조항을 약화시키는 방안을 의미하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 결론 6=“미국 측의 사료 강화 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기술하고 현재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OIE 등급 하락 이후에 비로소 취할 수 있다는 수입 중단 조치를 규정한 합의 조항의 유효기간을 설정하고, 한국이 WTO 위생검역 협정상의 잠정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확인 조항을 추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혹은 현재의 협상 결과를 그대로 시행하되 2년 뒤 동 조항을 개정하는 것을 양자 간 합의하는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다.”

(토론)=현재 협상 결과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30개월 이상 허용 여부, 미국 내 작업장에 대한 승인권, 강화된 사료 조치, 광우병 재발 시 조치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뒤의 두 가지에 대해선 추가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대부분 의견이 좁혀졌다. 특히 광우병 재발 시 수입 제한 조치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문제가 되는 항목의 유효기간을 설정하거나 2년 뒤 동 조항을 개정하자는 사항을 삽입하자는 것이다.

정리=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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