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統治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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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윈스턴 처칠이 그의 대독(對獨)강경책을 인정받아 연립내각의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1940년이었다.그러나 그로부터 2년쯤전 그는 파산위기에 직면한 일이 있었다.정치에 몰두하고 집안일에 등한시하다보니 씀씀이가 헤퍼져 그 많던 재산 이 바닥나기에이른 것이다.그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총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가로서의 생명도 끝장날 판이었다.그때 처칠의 적잖은 빚을 갚아준 사람은 남아프리카에서 큰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스트라코시란 친구였다.그 사실을 알게 된 처칠은 감사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모든 생각들을 현재 직면하고 있는 세계의 온갖 문제들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매일매일 내 은행계좌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두가지 모두 어색하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같은 처칠의 경우는 정치가와 돈의 함수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돈에 신경쓰면 정치를 잘할 수 없고,정치를 잘하려면 돈에 신경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영국에선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유능한 정치인일수록 파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18세기 중엽~19세기 초엽 사이 각각 두번씩 네차례나 총리직을 역임한 피트 부자(父子)가 좋은 예다.아버지가 큰 빚을지고 죽은 다음 총리직에 오른 아들 역시 적잖은 빚에 시달리고있을 때 왕과 의회와 런던시가 힘을 합쳐 도우려 하자 피트총리는 이를 완강히 거절했다.처칠이나 피트 부자의 정치적 업적이 아직까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들이 돈에 연연하지 않았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유능하면서도 돈은 없는 정치가의 재산상태를 「위대한 가난(nobl e poverty)」이라 일컫는것도 그래서 타당한 일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돈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정치하는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안될 것이 없다는망상에 빠져있는 탓이다.「통치자금」이란 말도 그런 발상이다.도대체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통치자금」이 왜 필 요하며,그 돈이 어떻게 조성돼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말인가.「통치 차원」이란 말 한마디로 모든 잘못이 해결된다는 사고방식부터 문제임을 위정자(爲政者)나 정치가들은 깊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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