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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도착한 한국 유학생 5명, “사흘 노숙 … 추위 이기려 돈·학생증 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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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진 때문에 차가 매몰되면서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했어요. 산속에서 3일간 노숙했는데, 무엇보다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나무는 물론 돈(지폐)과 학생증까지 태워 불을 지폈어요.”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현 일대를 여행하다 4일간 조난당했던 한국인 유학생 5명이 18일 무사히 청두(成都)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톈진(天津)외국어대학에서 유학 또는 연수 중인 이들 가운데 여학생 3명은 아직도 대지진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두려움에 떨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번 여행을 주도한 백준호(24·사진)씨는 지진 발생 당시와 탈출 과정 등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들은 6일 2주일 일정으로 톈진을 출발했다.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주자이거우(九寨溝·구채구)의 원시 비경을 만끽한 유학생들은 10일 주자이거우를 출발해 이번 지진의 진앙지로 차를 몰았다. 수만 명이 숨진 생지옥으로 들어간 것이다. 12일 오후 이들은 해발 6250m의 쓰구냥산(四姑娘山)과 워룽(臥龍) 판다보호구역을 구경하고 원촨현 잉슈(映秀)와 두장옌(都江堰)을 거쳐 청두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7인승 렌터카를 타고 험준한 산악 도로를 따라 워룽 판다 보호구역을 20여km 벗어난 이날 오후 2시 무렵 갑자기 산사태를 만났다.

백씨는 “오후 2시 정각에 집채만 한 바위가 차를 덮칠 듯 굴러 내려왔고, 차가 오른쪽으로 구르면서 3m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끔찍했던 당시를 기억했다. 공식 지진 발생 시간보다 28분 먼저 지진의 위력을 맛본 것이다. 매몰된 렌터카 운전자를 2시간 동안 구조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실패했다. 바위와 돌멩이들이 재차 쏟아지면서 필사적으로 뛰어서 현장을 벗어났다. 지진 직후 휴대전화가 두절되면서 이들은 사실상 조난상태에 빠졌다.

산길을 헤매던 중 만난 현지 주민들도 지진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본 상태였다. 백씨는 “지진으로 숨진 한 중국 여성의 묘지를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줬더니 그들이 우리에게 음식을 줬다”고 밝혔다. 현지에서 3일간 노숙하고 하루를 산장에서 지낸 이들은 15시간 동안 15㎞를 걸어 16일 오후 마침내 잉슈에 도착했다. “구조작업을 하던 무장경찰을 발견하면서 모두들 이제 살았다 싶었어요.”

잉슈에 설치된 중국 국제SOS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았고, 어렵게 가족과 청두 총영사관에 위성 전화를 걸어 생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잉슈에서 청두로 빠져 나오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았다.

당초에는 청두 총영사관의 요구로 중국 측 재해대책본부가 헬기를 내줄 예정이었으나 16, 17일 현지 기상 사정이 악화돼 헬기가 뜨지 못했다. 학생들은 결국 수천 명이 숨진 생지옥 같은 잉슈를 벗어나 두장옌까지 50여㎞를 다시 걸어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중국 측은 유학생들에게 3명의 안내자를 붙여 줬고 도보와 뱃길을 거쳐 마침내 17일 오후 9시 청두에 도착했다.

청두(쓰촨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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