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감시 무방비 항구 거쳐간 선박, 7월부터 미국 못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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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 각국 항구에 비상이 걸렸다. 오는 7월 1일부터는 테러 대비시설을 완비하지 못한 항구를 거친 선박은 미국 항구에 입항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25일 보도했다.

미국은 최근 정박한 10개의 항구 중 화물검색기 등 테러 대비시설이 없는 곳을 하나라도 거치거나 식별장치 등을 설치하지 않은 선박에 대해 입항을 금지시키는 법률을 2002년 11월 제정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이에 준하는 규칙을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하늘은 물론 바다를 통한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입항허가 기준을 까다롭게 바꿨다. 폭발물을 실은 배가 기름이나 액화가스가 가득 실린 유조선으로 돌진하기라도 한다면 9.11 이상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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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항구 비상=남은 기간은 석 달 남짓이다. 항구들이 그때까지 시설을 완비하지 못하면 해당 국가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의 교역이 중단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출입하는 물동량의 95%와 세계 교역품의 90% 이상이 바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부두 인프라가 미비한 후진국들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예산 부족=전 세계의 교역항구와 선박들이 테러 방지설비를 갖추려면 수십억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온두라스의 푸에르토 코르테스항은 최근 400만달러를 들여 컴퓨터와 순시선.경찰차.카메라 등 보안장비를 '울며 겨자먹기'로 구입했다. 이곳에선 한 달에 100여척의 선박이 미국의 항구로 떠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가난한 국가에 자신들의 안보 비용을 떠넘긴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항구들도 예산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70억달러가 필요하지만 내년에 배당된 예산은 4600만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연말까지 제출하기로 돼 있던 보안계획을 아직도 내지 못한 항구들이 많다.

◇한국 사정=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적 선박들의 IMO 규칙에 따른 보안계획서 제출 실적은 50% 정도다. 한국 선사 소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편의치적 선박'(세금 비용 문제로 국적을 다른 나라로 바꾼 선박)도 비슷한 진도라는 게 해수부의 판단이다. 해수부는 "보안인증을 못 받으면 당장 7월 1일부터 미국 운항을 못해 6월 말까지는 각 선사 주도로 보안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항만 쪽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최재선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28개 국제항만 중 부산.인천 등 큰 곳은 시설이 잘 돼 있지만 군소 항만의 보안시설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한경환.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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