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배우와 첫 작업 … 사람 감정은 똑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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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를 제61회 칸영화제에 선보인 세 명의 감독. 오른쪽부터 봉준호, 레오 카락스와 미셸 공드리. [칸 AP=연합뉴스]

“도시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도쿄에 가보면 사람들이 유난히 서로 피해를 줄까봐 쩔쩔매고,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몸이 닿을까 움츠리는 인상을 받잖아요. 일본에서도 유독 도쿄 사람들이 그런가 봐요. 그렇게 타인을 경계하는 느낌, 간단히 말해 외로운 느낌의 극단을 히키코모리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흔들리는 도쿄’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칸에서 주목하는 영화를 모은 섹션) 부문에 초청된 봉준호(38) 감독의 말이다.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 즉 집안에만 틀어박혀 생활한 지 11년째인 남자(가가와 데루유키)의 이야기다. 그가 피자배달부 소녀(아오이 유)와의 기이한 인연으로 집밖에 나설 결심을 하고, 예상 못했던 현실을 목격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도쿄를 주제로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가 각각 만든 영화와 함께 세 편이 ‘도쿄!’라는 큰 제목으로 묶여 15일(현지시간) 공식 상영됐다.

기자 시사회에서 각각 35분 남짓한 세 편의 영화는 저마다 다른 개성의 완성도로 상당한 박수를 받았다.

“옴니버스 영화가 잔인한 게, 감독들이 서로 비교가 되잖아요. 마음을 편하게 먹었어요. 레오 카락스는 제가 대학 영화동아리 시절부터 우상처럼 여겼던 감독이고, 미셸 공드리도 선배지요. 가장 후배인 나 자신을 콘서트에서 메인 밴드가 나오기 전에 연주하는 오프닝 밴드처럼 생각하기로 했어요.”

영화에서는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처럼, 자신의 영화를 만들든 남의 영화를 보든 뭐든지 허투루 하지 않는 그의 솜씨가 확인됐다. 주연 가가와 데루유키는 봉 감독이 2년 전 ‘괴물’로 칸을 찾았을 때, 일본 영화 ‘유레루’에 출연한 걸 보고 점 찍어둔 배우다.

“한국배우로 치면 송강호와 감우성을 합쳤다고나 할까요. 괴이한 파워와 미묘한 섬세함을 고루 갖췄어요.”

한국에도 팬이 많은 아오이 유에 대해서는 “평범한 외모인데 카메라를 통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화면 장악력이 느껴지는, 천상 타고난 배우”라고 평했다.

‘흔들리는 도쿄’는 봉 감독의 그전 영화들과 달리 감성적인 농도가 꽤 짙다. 여느 사람보다 훨씬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히키코모리의 감성을 빌어 섬세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우리가 매일 하는, 대문을 나서는 일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혹 관객들이 멜로나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제가 아니라 이와이 슌지의 감독을 자막에 넣으면 관객들이 속지 않을까”라고 농담을 했다. 이와이는 감성적인 멜로로 유명한 일본 감독이다.

이번 영화는 봉 감독의 첫 국제적 프로젝트다. 그는 그간 할리우드에서도 다양한 연출 제안을 받아왔다.

“외국 배우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연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두렵고도 설랬는데, 희로애락의 인간감정은 결국 서로 통하더군요. 그걸 확인한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도쿄!’는 ‘주목할 만한 시선’의 초청작으로는 드물게 레드카펫(보통 경쟁부문에 제한)이 깔리는 대접을 받았다. 봉 감독 역시 평소 소탈한 차림과 달리 나비넥타이 정장으로 참석했다. 2년 전 ‘괴물’은 비공식부문인 감독주간에 초청됐던 터라, 당시엔 불필요했던 차림이다.

“아직도 드레스 코드를 고집하는 영화제가 있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영화에 대한 존중이라면 그걸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한 일주일은 놀림 받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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