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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난치병 어린이들 꿈 이뤄주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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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천에 사는 열살난 영준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척추성 근위축증'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호흡기 보조장치 등을 떼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다. 영준이에게는 소원이 있다. 컴퓨터 축구게임을 할 수 있게 자신의 컴퓨터를 갖는 것과 성남 일화 선수들을 화상으로라도 만나보는 것이다.

영준이는 지난 19일 이 소원을 이뤘다. 사연을 전해들은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한국재단'(www.wish.or.kr)에서 성남 일화의 김도훈.이기형.신치용 선수가 "영진이, 힘내라"고 외치는 동영상과 사인을 한 축구공, 그리고 컴퓨터를 선물한 것이다.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은 대개 세 가지 종류의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싶다거나, 무엇을 갖고 싶다거나, 어디에 가보고 싶다는 거지요. 간절한 소원을 이룬 뒤 소생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원을 풀어줄 준비를 하는 도중에 아이가 숨을 거둘 때면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이달 초 '메이크 어 위시 한국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푸르덴셜생명 황우진(黃佑鎭.49) 사장은 "이웃과 애환을 함께하는 것이 기업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믿음에서 이 자리를 맡았다"고 말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꿈을 현실로 이어주는 '세계 메이크 어 위시 재단 한국지부'는 이달 초 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의사.변호사.기업체 최고경영자 등이 이사진으로 있으며,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돕고 있다. 한국 재단은 지난해에는 26명, 올해 들어서는 네명의 소원을 들어줬다.

"난치병 어린이를 둔 부모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취지를 이해하고 고마워하면서도 아이를 사람들 앞에 내놓기를 꺼립니다. 그래서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죠. "

黃사장은 자신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이 재단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다고 했다. 경북 문경에서 농사꾼의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교를 다니던 중 무작정 상경했다. 이대로 시골에 파묻혀 있다가는 영영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서울 거여동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던 그는 거여동 장로교회 한 집사의 도움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고에 입학했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목욕탕 보일러공.욕실 보조원 등으로 일하며 서강대 영문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교사와 욕실 보조원으로 일했다.

"막노동을 하면서 땀방울의 값어치를 배웠습니다. 목욕탕에서 남의 때를 밀면서는 제 마음의 때도 함께 벗겼지요. 젊은 시절 험한 일들을 두루 경험한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그는 건설회사인 ㈜한양과 미국 백화점연합의 상품구매회사인 AMC 등에서 근무하다 1990년 푸르덴셜에 입사, 관리직과 생활설계사(LP) 등 영업직, 해외 현지법인 파견근무 등 각 업무 분야를 고루 섭렵한 뒤 지난해 말 사장에 올랐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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