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기업이 占卦에 끌리는 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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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여자 점술가(占術家)인 심진송(沈震頌)씨가 펴낸 『神이선택한 여자』란 책이 베스트셀러로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다.김일성(金日成)사망을 거의 정확히 맞혔다고 해 유명해진 그녀가 다시 남북문제를 비롯,정치.경제등 각 분야에 관 한 예언을 했으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만 하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내년에 김정일(金正日)이 유럽에 망명하고 내각제가 조기실시될 것이라고 예언해 우리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시켜 놓았다.그녀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는 있게 마련이다.시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할 때 더 심하다.특히 한 세기(世紀)를 마감하고 다음 세기를 맞을 때는 숱한 예언들이 쏟아져 나온다.그것은 세기말의 여러 변화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새로운 세기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의 적중률은 낮은 편이다.황당한 것이 더 많아 세상을 더 어지럽히기도 한다.언젠가 영국에서 3대 점성가의 적중률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가장 성적이 좋았던 때가 40%고 보통 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점성술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도처에서 여전히 위력을발휘하고 있다.심지어 국가원수나 정치가.사업가들도 점성술을 신봉하는 이가 많다.미국의 프레드릭 데이비스는 마거릿공주의 운세를 봐준 것이 인연이 돼 영국왕실의 전속(?)점 성가가 됐는데그의 단골 고객들은 주로 세계의 왕족.정치가.기업인들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미국의 레이건 전대통령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도 그들의 주요 정책결정 때 점성가의 말을 참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나라의 지도자들도 이 정 도인데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현대인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점성가가 아닌 유명과학자들이 예측한 미래가 점성가의 예언과 흡사하다는 데 있다.일부미국이나 러시아과학자들이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해 연구분석한 결과 2100년이 조금 지나서 지구는 거대한 혜성 이나 혹성과 충돌해서 지구최후의 날이 온다고 예측한 것이다.
이들은 또 인류가 저지른 무책임한 환경파괴와 그로인한 기상이변이 극심해져 인류멸망의 위기를 맞게된다고 예언했다.올해 일어난 유럽의 대홍수,일본 효고현 남부 대지진,미국전역의 폭염등을생각하면 이들의 예언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여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점성가의 말은 믿지않는다.재미로 들을뿐이다.그러나점성가를 만나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정확히 맞추는 것을 보고는깜짝 놀란다.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무엇인가 있는 것같은신비함을 느끼게 된다.사람들은 누구나 미래■ 일에 대해 어쩔수없는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다.때문에 사람들은 예언을 하는 점성가의 말에 솔깃한다.그만큼 우리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나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심씨가쓴 책을 읽어본 것도 그같은 심정때문일 듯싶다.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다.심씨는 정부나 민간경제연구소등이 내놓은 내년도 경제예측과 정반대로 예언했다.연구소등은 경제 가 연착륙(軟着陸)해 안정궤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데 반해 그녀는 정국혼란등으로 내년 경제가 아주 나빠질 것으로 예언한 것이다.그러니연구원들은 신경이 안쓰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데이터,그리고 국제정세등 모든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해 내년을 예측하는 연구소,매사를 앞서나가는 기업경영자들이 점술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증거다.거기에는 정부와 정치가의 책임이 크다.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정국(政局)이 불안정하고 정책이 갈팡질팡하니 경영자들이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내년에 어느 당(黨)이 집권당이 되고 차기 대권은 누가 쥐게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경제정책은 뚜렷한 비전없이 왔다갔다하며계속 표류하고 있으니 기업들은 어디에 목표를 두고 사업계획을 세워야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때 심씨가 내년의 정치.경제분야등에 관한 예언집을 내놓았으니 기업들이 참고용으로 읽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이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결국 정국이 안정되고 정책의 비전이 보일때 기업들은 확신을 갖고 미래전략을 세울수 있 는 것이다.
위정자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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