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39> 김수영 미발표작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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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1921∼68) 서거 40주기를 한 달쯤 앞둔 오늘, 한국 문단은 김수영으로 인하여 다시 시끄럽다. 발단은 ‘창작과비평’ 여름호다. ‘창작과비평’은 “김수영의 미발표 시 15편을 발굴했다”며 “김수영 연구사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창작과비평’의 발표는 일대 사건에 가깝다. 다름 아닌 김수영의 시여서다. 김수영은 스스로 한국 현대시의 한 줄기를 형성한 시인이다. 하나 그가 생전에 발표한 시는 170여 편에 그친다. 그 10%에 가까운 새 작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단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다.

한데 무언가 찜찜했다. 원고 성격부터 엇갈렸다. 원고를 공개한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간직해온 원고”라며 “『김수영 전집』이 간행된 뒤 부인이 일부의 원고를 돌려받았는데 이게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 『김수영 전집』을 제작한 시인의 여동생 김수명(60년대 ‘현대문학’ 편집장)씨의 설명은 다르다.

“오빠는 죽기 전에 발표 원고를 직접 골랐고 목록 작업까지 손수 마쳤다. 나는 내가 받은 원고 그대로 책으로 만들었다. 점 하나 빼거나 더하지 않았다. 책을 만들고나서 언니에게 돌려준 원고는 당연히 없었다. 즉 이번 원고는 오빠가 마음에 안 차 묵혔던 미완성 초고로 보인다.”

김명인 교수도 이번에 찾아낸 시 15편 대부분이 미완성이라고 인정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생전의 시인이 덜 여물었다고 판단해 내다 놓지 않은 초고를, 후세의 연구자가 미발표작이라 이름붙여 발표해도 되는가. 미(未)발표가 아니라 ‘비(非)발표’ 아닌가. 유고작가의 작품을 발굴했다는 건 지면에 발표된 작품을 찾아냈을 때 적용되는 어법 아닌가. 일기 안에 들어있는, 운문 구조의 몇 줄 글을 떼어내 제목을 달면 시가 되는 건가.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김수영을 말하고 있다. 꼼꼼하다 못해 깐깐했던 시대의 인텔리겐차 김수영 말이다. 이 원고가 세상에 까발려지는 걸 김수영은 순순히 동의했을까. 김수영은 이 원고를 진정 ‘내 작품’이라 여겼을까.

김수영을 전공한 비평가 5명으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연구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답했다. 대신 “김수영 문학의 진본(珍本)이라는 김명인 교수의 주장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자, 그럼 이 원고는 『김수영 전집』 1권(시 전집)에 추가로 수록되는 게 옳은가. 전집에 실린다는 건, 대중 앞에 김수영의 시라고 도장을 찍어 내놓는다는 걸 의미한다. 이래도 되는 걸까. 저승의 김수영에게 혹여 흠이 되는 건 아닐까. 정말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이번에 공개된 작품 중에 ‘김일성만세’란 게 있다. ‘연꽃’과 함께 완성도가 인정된 두 편의 시다. ‘김일성만세’는 1960년 ‘잠꼬대’란 제목으로 발표하려다 실패한 작품이다. ‘김일성만세’ 다섯 글자 때문이다. 저간의 사정이 김수영 일기에도 나와있지만(『김수영 전집 2』, 339∼340쪽), 전문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네티즌이 이걸 보고 쑥덕이는 모양이다. 김일성 만세! 라니, 이런 반응이 대세란다. 하나 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얘기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이다. 김수영은 사회의 금기를 대놓고 따지고 싶었던 거다. 하니 이젠 제발, 이러지 말자. 시방 이딴 걸로 호들갑떠는 건 외려 우습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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