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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짧은 한국 중소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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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실리콘밸리 같은 클러스터(기술집약 산업단지) 위주의 과학기반형 중소업체가 많은 곳이 미국이라면 일본은 가업을 잇는 가계승계형, 이탈리아는 가족경영 방식이 많다. 우리나라 중소업체의 특징은 무얼까. 두드러진 색깔이나 특장점을 찾기 힘들다는 게 중소업계 스스로 내린 평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주간’을 맞아 13일 내놓은 중소기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소업체 열 중 아홉은 종업원 10인 미만이었다. 이들 10인 미만 중소업체의 1인당 부가가치는 2만7000달러로, 같은 규모의 선진국 중소업체에 비해 훨씬 작았다. 영국은 8만5000달러, 이탈리아는 7만8000달러, 일본은 5만4000달러였다.

이렇다 보니 기업의 수명이 짧고 경쟁력도 뒤처진다. 일본에선 중소기업이 한번 창업하면 열에 일곱은 5년 이상 존속한다. 한국에선 5년 이상 굴러가는 중소업체가 열 중 둘이다. 창립 5년 미만 기업이 절반 가까이 되고 30년 이상 장수 기업은 1.5%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뛰어난 기술로 무장한 신생 업체가 줄을 잇는 것도 아니다.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를 100으로 봤을 때 신기술 개발이나 제조기술·디자인에서 70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을 100%로 봤을 때 독일(93%)·이탈리아(76%)·일본(71%)에 한참 뒤진 41%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엔 작지만 탄탄한 강소기업보다 작아서 약할 수밖에 없는 부실업체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도약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일까. 중소기업인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저해하는 1순위 요인으로 불공정 하도급 같은 부당 상거래(31.6%)를 꼽았다. 공장 부지와 관련된 행정규제(24.6%), 복합한 조세제도(15.4%), 잡다한 신고·보고와 같은 불필요한 행정부담(14.4%)도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답했다. 경영 위협 요인으로는 ▶내수 침체(35.8%) ▶인력 부족(29%) ▶중국과의 경쟁(28.4%)을 꼽았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오동윤 책임연구원은 “국내 중소기업은 선진국과 달리 대기업 납품업체로 성장해 대기업이 얼마나 일거리를 주느냐에 기업의 성패가 좌우됐다. 국내 거래처를 다변화하고 해외 시장을 뚫으려면 독자 기술·노하우를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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