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속의 "합리적 기대가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한 남자가 짝사랑에 빠졌다.그는 매일 오후7시에 퇴근하는 「마음속의 그녀」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곤 했다.그러던 어느 날 7시가 됐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그녀의 근무형태가 재택(在宅)근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그는 그녀의 회사 에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한 뒤 달리 얼굴을 볼 기회를 찾는다.이런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합리적 기대」에 의한 의사결정이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내일은 7시에 나타나겠지』하며 며칠을 공칠 것이다.과거의 경험 또는 낡은 정보에 매달려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다.
「합리적 기대」를 가진 경제인들은 시장에서 유효한 정보를 수집,분석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한다.이것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대 로버트 루카스교수의 「합리적 기대가설」이다.경제학은 흔히 어렵다고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활학문」이라 일상속에서 그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합리적 기대가설」을주창하면서 루카스는 몇가지 전제를 내세웠다.즉 정부.기업.가계등 경제주체들은 모두 「합리적 기대」를 지녔으며 모든 정보는 금세 공유되고 이 때문에 수요와 공 급은 언제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A사 주가를 올리기 위해 말 잘 듣는 기관투자가를 동원해 A주식을 대량 매입한다 치자.주가는 올라간다.그러나 투자자들도 곧 이런 사실을 알면서 상황은 반전된다.주가가 실제가치보다 올라간 지금 A주식을 빨리 팔아 치우 는게 상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이란 일종의 요술에 불과해 일시적으로 효과를 낼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루카스의 주장이다.그렇다면 정부가 경제를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케인스학파는 설 땅이 없다.그래서 루카스를 「케인스를 죽 인」사람이라고도 한다.그러나 그의 이론은 전제조건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받는다.특히 시장에서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는 전제가 그렇다.실제로는 특히 우리처럼 정보가 폐쇄적인 나라에선 전제부터 어긋난다. 모순적인 대목도 발견된다.모든 사람들이 다 그의 말대로 「합리적으로」행동하는 그 순간 그의 가설은 틀렸다는 점이 입증되기 때문이다.A주식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투자자들이 「합리적기대」를 갖고 일시에 A주식을 판다면 주가는 실제가 치 아래까지 떨어진다.이 경우 A주식을 사는 비합리적 행동을 한 사람이실제가치보다 저평가된 만큼의 이익을 보는 셈이다.이런 한계에도불구하고 이 이론이 매력을 끄는 것은 정보공유같은 조건만 맞춰나간다면 훨씬 쉽게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