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한경환 특파원 사라예보 제2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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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마 이게 평화인지도 모르죠.』 10일 오후7시(현지시간)사라예보 시내 무스타파 후세인 스파히치(50)의 집.
온가족이 사위의 어둠을 밝히는 전등불에 환호하며 평화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잠시후엔 가스가 들어왔고 졸졸거리는 소리와 함께 틀어놓은 수도꼭지를 통해 물도 공급됐다.그동안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땔감등으로 만들어온 스파히치 부인의 입에선 탄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정말로 휴전이 성립되는 모양이죠.』 한국에서라면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일이지만 사라예보에선 이날의 전기.수돗물 공급이 시민들에게 적지않은 흥분과 충격을 가져다 준 것으로보인다. 사라예보에 전기와 가스가 공급된 것은 거의 7개월만의일로,휴전이 성립되고 평화가 올 것이라는 신호가 물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라예보 주변을 세르비아계가 포위해 모든 시설을 차단시켰기 때문이다.유일한 동력은 북부 투즐라에서 지하터널로 송전되는 극히 적은 양(量)의 전기밖에 없었고 이것은 정부청사와 외신기자.외국옵서버들이 투숙하고 있는 호텔등 제한된 지역 에만 공급됐다.이때문에 일반 가정은 지난해부터 휴전기간을 제외하고는 5일에 한번 하루 4시간씩만 전기를 받았다.
전기와 가스가 정상적이면 곧바로 평화가 성립된 것을 의미했고이게 중단되면 이는 곧 전쟁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이날의 가스와 전기.수돗물의 공급을 환영하면서도진정한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것 같았다.보드린야거리에서 만난 즐라트카양은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토코라는 동네의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디얀키치아니차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나 휴전을 믿을 것』이라고 고개를 흔들어댔다.
비록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한 두번 속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 했을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전쟁발발후 이번이 무려 38번째휴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이었다.
전쟁전에 츠라크라는 광학제품 공장에서 일을 했던 스파히치는 보스니아에서의 휴전은 공수표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다.아니나 다를까 이날 밤에는 시내주변 여기저기에서 총성이 울렸다.전기와 가스는 계속 공급되고 있지만 불안도 함께 여 전히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 회교 정부의 실라지치 총리는 이날 사라예보 주변에서세르비아계의 중화기가 완전히 철수하기 전까지는 평화나 휴전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또 사라예보 공항 주변의 초소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휴전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조건인 사라예보와 동부 회교 고립지대 고라주데간의 통행보장도 확실하지 않다.
현재 사라예보에 머물고 있는 많은 기자들은 유엔차량을 따라 고라주데 진입이 가능한지 정보를 교환하기에 여념이 없다.휴전기간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교전을 벌여왔던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라예보 주민들은 오늘밤도 근심에서 해 방되지 못한채 선잠만을 청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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