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동녕 포항가속기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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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엔이 주최한 핵융합 에너지 평화 이용 회의가 58년 제네바에서 개최됐고 당시 유럽에 유학중이던 나는 이 회의에 참석해 각국이 처음 공개하는 실험장치를 돌아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단기에 성공하리라는 초기의 전망과는 달리 극한 상황에서 플라즈마를 충분한 시간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그로부터 40년 가까이 각국에서 연구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유망한 장치로 연구가 집중되 고 있다.일부 비전문가들이 그릇되게 믿고 있는 것처럼 핵융합 연구는 결코실패작이 아니며 그동안 착실하게 목표를 향해 접근하고 있고 축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과 함께 상당한 성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누적된 재정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이 전체예산을 축소하면서 대통령 자문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 분야 투자를 축소하려 한다는 소식도 있지만 일본과 유럽연합에서는 투자가 계속되고 있으며 국제 공동연구로 개발중인「국제 열 핵융합실험로(ITER)」의 설계와 건설이 구체화 단계를 맞고 있다.
에너지 부존 자원에서 우리와 같이 여의롭지 못한 일본과 유럽연합은 ITER의 자국 유치에 적극적이며 특히 일본에서는 최근 경단련(經團連)이 ITER유치를 결의하기도 했다.우리나라도 석유.석탄등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나 이로 인한 환경공해.폐기물 및 방사능 누출사고 가능성 등의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해 바닷물의 중수소를 원료로 하고 사고 위험이나 핵 폐기물이 거의 없는 핵융합 에너지는 차세기에 가장 바람직한 에너지원임에 틀림없다.상업발전 실현시기가 현재 투자 규모일 때는2030년께로 예상되고 있으나 다른 에너지원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실현 시기는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핵융합 연구의 꿈을 결코 버릴수 없는 것이다.국가적 연구 사업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최근 대통령 담화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온 국내 관련 연구와 인력양성을 크게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해외에서 활약중인 많은 한국계학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외의 중지를 모아 신중하고 슬기롭게 연구계획을 수립해 우리 재정능력에 알맞으면서 국제 수준의 연구가 가능한 장비를 국제협력을 통해 국내에서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연구력을 향상시켜 ITER등 국제계획에 동반자적 참여를 실현시킴으로써 21세기에는 핵융합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이 길만이 21세기 에너지 기술 자립국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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