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농가 → 중간상 → 시장 통해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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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AI)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울에서 발견된 AI가 경기도 안성의 한 농장에서 옮겨졌다고 서울시가 밝힌 가운데 이 농장이 최근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만3000여 마리와 알 7200여 개를 전국 6개 시·도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나 AI가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달 3일 전북 김제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고병원성 AI는 37일 만에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9일까지 고병원성 AI가 확인된 사례는 전국적으로 13개 시·군·구에 걸쳐 35건에 달하며, 가금류 700여 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경기도·대구·부산에서 추가로 AI가 발생한 4건은 고병원성 여부를 검사 중이다.

◇“AI, 안성에서 모란시장 거쳐 서울로”=이성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은 9일 “AI를 전염시킨 것으로 판명된 안성 D농장에서 나온 가금류 수송 트럭이 13군데 재래시장을 들렀는데 경기도 모란시장과 강원도 화천시장 등 3곳에서 AI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AI의 잠복 기간은 길게 잡으면 3~21일로 D농장이 감염 경로인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4일과 19일 D농장에서 출하한 병아리·오리와, 광진구청이 지난달 24일 사들인 꿩이 성남 모란시장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AI가 전염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4월 15일 D농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AI 정밀 검사를 했지만 당시에는 AI가 나오지 않고 이달 7일에야 AI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며 “D농장에서 AI가 전파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AI의 잠복 기간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최대 21일, 경기도는 3일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D농장은 8일 가금류 1만4000마리를 살처분하고 알 2만 개를 폐기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7일까지 경기도 일대에 4517마리가 팔려 나간 것을 비롯해 충북 2992마리, 대구 3660마리, 대전 900마리, 전북 900마리, 경남에 60마리가 반출됐다. 경기도 방역본부는 해당 시·도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AI 검사와 방역활동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일한 초기 대응이 문제 키워=올해의 경우 AI가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방역당국은 최근에야 재래시장 통제에 나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장 안성 D농장과 모란시장에서 팔려 나간 닭과 오리 등을 추적해 AI 감염 여부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AI가 발생한 지역에서 닭·오리가 밀반출되고, 폐사 신고가 즉시 이뤄지지 않는 등 농가의 비협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대 김재홍(수의학) 교수는 “중간상인들이 사육농가에서 AI 감염 조류를 구입한 뒤 재래시장이나 음식점에 공급하고 있다”며 “후진국형 거래의 표본으로 고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고강도의 국가방역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기에 방역기관의 안일함과 늑장 대응 등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며 “국가방역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9일 국회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AI 확산을 막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이뤄지는 살아 있는 닭이나 오리의 판매를 철저히 단속하기로 결정했다. 전문 도축장이 아닌 농가나 식당에서 닭·오리를 도축하는 것도 금지시킬 방침이다. 당정은 또 ▶계란을 포함한 가축의 유통 상인과 모든 수송 차량에 대한 등록제 도입 ▶피해 축산농가에 대한 정책자금 상환 연기와 이자 감면 등도 추진키로 합의했다.

최선욱·손해용 기자

◇성남 모란시장=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상설 재래시장. 민속시장(5일장)도 상설시장 주변 하천 복개지에서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짜에 열리고 있다. 개·닭·오리·거위 등 살아 있는 동물을 파는 점포가 25개 있으며, 지난달 25일부터 ‘날개 있는 짐승’의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그전에는 하루 200~300마리의 가금류를 거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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