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헬무트 콜의 요리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하넬로레,아까부터 현관 벨이 울려요.』 『지금 만두속을 빚고 있는데,헬무트 당신이 나가봐요.거위 간(肝)은 오래 묵히면맛이 변하잖아요.3백50가지의 독일 전통요리 가운데 이 거위간만두가 최고니까 요리에 정성을 들여야죠.』 『우리 부부가 요리책을 냈다니까 전 세계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 것같소.그러나 내가 식도락가(食道樂家)고,내 이름 콜(Kohl)이 독일어로 양배추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하다 여길거요.』 『으쓱대지 말아요.당신이 진정한 요리 전문가가 되려면 영어 공부를 더 해야 돼요.지난번 영국 여행때 믹스트 피클(Mixed-pickles)을 사오라니까 빈손으로 돌아와서 믹스트 피클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못사왔다고 했잖아 요.』 『그러는 당신은 말귀를 알아듣는 훈련좀 해야겠소.어느날 책가게에 갔다가 점원이 가벼운 것을 드릴까요 했더니 무거운 것도 좋아요,자동차를 가져 왔으니까요 했잖소.』 『그러는 당신은요.어느날 조간신문을 읽고 혀를 끌끌 차길래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위조지폐범 일당이 잡혔는데,그 친구들 진짜 돈을 찍어 냈으면 탈이없었을텐데 했잖아요.』 『사리분별을 잘 못하기로는 귄터 그라스가 나보다 더해.어느날 한 문학 행사에서 그를 만났는데 총리께서는 슈타인 부인에게 쓴 괴테의 편지가 최근에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잖아.』 『그래서요.』 『그게 어떻게 現 기민당(基民黨)연립내각의 책임이냐고 화를 벌컥 냈지.그 편지는분명히 전임 내각의 체신장관이 책임질 일이라고 소리도 지르고.
』 『잘 하셨어요.나는 귄터 그라스가 싫어요.유럽을 대표하는 대문호(大文豪)라고 으시대면서,독일 통일은 절대 빨리 되지 않는다고 헛소리를 했잖아요.그 다음해에 독일 통일이 잘만 됩디다.』 『그러고 보니 5년전의 이맘때가 생각나는군.통독이 선포된건 10월3일 밤 자정이고 다음날 제국(帝國)의사당에서 첫 통일 의회가 열렸지.내가 이웃 나라에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고선언하니까 유럽 전체가 발을 뻗고 자게됐다고 좋아하 더구먼.』『10월3일을 개천절 국경일로 정해서 그런지 독일 통일을 보는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대요.당신이 가서 훈수 좀하세요.』 『헬무트 슈미트가 가끔 가서 충고를 하는 것 같습디다.한국의 문제는 통일의 걸림돌인 김일성(金日成)이 죽었는데도그 기회를 통일 여건조성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오.비극입니다.』 『독일 통일 5주년을 맞아 이면(裏面)의 얘기를 담은 회고록을 내면 어떨까요.』 『회고록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내 신조라는 것 당신도 알지 않소.정치적 동지나 친구로 사귄 외국 원수들에게 상처를 주기 싫소.혹시 「콜 총리의 웃음」을 지은 한국의 중앙일보 유재식(劉載植)기자라면….그에게 귀띔은 할 수도 있지.』 『현관에서 벨이 계속 울려요.』 『도대체 누구길래요리를 만드는 우리 부부를 귀찮게 하는거요.』 『헬무트 콜 총리,세계 정치학회는 당신을 「1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할 명재상(名宰相)」으로 선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당신들,아데나워 선배 집을 잘못 찾아 온게 아니요.내 암퇘지고기 요리가 석쇠에서 타기 전에 썩 꺼지시요.』 〈수석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