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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광우병 ‘이성의 부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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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용선 한림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이틀 동안 핀란드 헬싱키의 호텔을 헤매고 다니면서 든 생각은 ‘김 교수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광우병 전문가다. 그의 논문이 “한국인은 광우병에 잘 걸린다”는 내용으로 소개되면서 국민의 불안은 한껏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논문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반박도 있었지만, 인터넷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설렁탕이나 라면을 먹어도 광우병에 걸릴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민은 그의 설명을 기대했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헬싱키 대학과의 국제협력을 이유로 출국했다. 왠지 ‘도피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렵사리 6일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내 만났지만 그는 “어떤 얘기도 당분간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나라가 이 지경인데 책임 회피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승강이해도 그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김 교수와 함께 있던 윤대원 한림대 이사장의 얘기를 듣고난 뒤 김 교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윤 이사장은 “김 교수의 논문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 그가 나설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 아니면 적’으로 몰리는 분위기에서 김 교수가 뭐라고 말하든 진실로 받아들여지겠느냐” “더 무서운 건 김 교수가 뭐라고 말해도 다시 이를 정치적 의도로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점”이란 얘기까지 했다. 김 교수는 광우병 논란 이후 집으로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왜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느냐”며 분뇨 세례까지 받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이성의 부재’가 그를 침묵하게 만들었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지금 우리 사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건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해답이다.

그 판단은 김 교수 같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정치권의 공방이나 촛불시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학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할수록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무엇이 먼저인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다. <헬싱키에서>

전진배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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