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새 역사 열자” 1995년산 동 페리뇽 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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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밤 도쿄 왕궁 연회장인 호메이덴(豊明殿). 일본 전통 피리 연주자 시바스케 야스(芝祐靖)의 ‘신아이(親愛)’라는 곡이 흐르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아키히토(明仁) 일본 국왕 내외가 연회장에 들어섰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이날 중국 국가주석 환영 만찬장에는 147명의 일본 왕족과 중·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일왕은 올해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3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환영 인사를 했다. 이에 후 주석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중·일 관계는 지금,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 서 있다”며 건배를 제의했다. 건배용 샴페인은 1995년산 동 페리뇽이었다.

일본 궁중 만찬은 전통적으로 콩소메(맑은 수프)로 시작하는 프랑스 코스 요리다. 이날 메뉴는 제비집 콩소메, 새우·샤프란을 곁들인 농어찜에다 메인 음식으로 감자튀김·크레송·야채를 곁들인 양 뒷다리 로스트(roast), 야채 샐러드였다. 후식은 후지산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음료로는 1996년산 퓨리니 몽라셰(화이트 와인), 90년산 샤토 라투르(레드 와인)가 제공됐다. 포도주와 샴페인은 왕궁 지하 1층 와인 창고에 보관돼 있던 4500여 병 가운데서 정해졌다.

이날 궁내청에 설치돼 있는 악부(樂部)가 전통 아악 연주곡, 중국 민요, 구마모토 민요 ‘오테모양’, 하이든의 디베르티멘토, 글루크의 ‘정령의 춤’ 등을 연주했다. 가수 다니무라 신지의 대표곡 ‘스바루’는 98년 장쩌민 당시 주석이 방일했을 때 열린 환영 만찬에 이어 이번에도 선곡됐다.

후 주석은 방일 사흘째인 8일 아침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모리 요시로(森喜朗)·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아베 신조(安倍晋三) 등 역대 일본 총리 4명과 식사를 함께했다. 그러나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임 중 매년 한 차례씩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중국과 심각한 외교 갈등을 빚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불참했다.

후 주석은 이날 오후에는 와세다대에서 30분간 특별강연을 했다. 그는 “근대에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 전쟁으로 중·일 우호관계가 크게 훼손됐으며, 중국 인민은 물론 일본 국민에게도 큰 피해가 됐다” 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한을 계속 안고 가서는 안 되며, 양국 국민이 손잡고 평화와 우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양국이 경쟁 관계 대신 파트너 관계가 되자”고 말했다. 그는 강연 후 양복 상의와 안경을 벗고 와세다대에 재학 중인 일본 탁구 스타 후쿠하라 아이(福原愛) 선수와 탁구 경기를 벌였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의 탁구 경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후쿠다 총리는 “경기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전략적인 플레이를 하는 후 주석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와세다대 앞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후 주석은 티베트인들의 자치권과 인권을 탄압하고 있는 지도자”라며 항의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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