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창조적 재능을 가꾸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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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복 반세기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풍성해 이번 여름은 텔레비전앞에 앉는 것이 즐거웠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음악가들이 뛰어난 기량을 드러낸 무대들은 특히 반가웠다.
그러나 그런 무대가 끝나면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그들이 부르거나 연주한 곡들은 모두 외국인들이 만든 것이었다.
서양 음악을 받아들인지 한 세기가 된 지금,우리는 그것의 재현에선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창조에선 이룬 것이 많지 않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음악의 창조와 재현은 필요한 재능에서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것들에 매겨지는 값에서도 차이가 크다.연주와 작곡 양쪽에서 큰 명성을 얻은 모차르트나 쇼팽의 업적에서 연주와 작곡이 공헌한 몫을 생각해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창조와 재현 사이에 있는 그런 차이에 둔감하다는 사실이다.거의 모든 사람들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가수나 연주자를 키워내는 일이라고 여긴다.실은 음악전문가들까지 자주 그런 태도를 드러낸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상이 모든 부면들에 퍼졌다는 점이다.창조성이 특히 중요한 기술 분야는 이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우리기술자들이 무엇을 개발했다는 기사엔 거의 언제나 「세계에서 두번째」라는 말이 자랑스럽게 따른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서 두번째가 어떻게 큰 가치를 지니겠는가.
때로는 다른 공정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역시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그래서 그런 개발은 높은 평가도 큰 값도 받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 재능과 활동이 드문 데는 물론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풍토가 창조적 재능과 활동을높이 여기지 않는다는 사정이 근본적 요인이란 점이다.그런 상태에선 무엇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나올 수 없다.
기술개발에서 그 사실이 잘 드러난다.남들이 밟지 않은 땅을 가는 일이다.창조적 연구엔 큰 위험이 따른다.그것보다는 남들이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하고 연구비를 타기에도 수월하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외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재현하도록 만드는 힘이 늘 작용한다.
창조성을 높이 여기도록 사회풍토를 바꾸는 것은 어렵고 더디다.지식 자체를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지식을 찾는 길을 가르치는 교육이나,야심찬 목표를 위한 장기적 투자 따위는 이내 눈에 띄는 방안들이지만 막상 그것을 시행하기는 무척 어렵 다.
가장 현실적인 길은 지적 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외국의 지적 재산들을 제값을 치르고 들여오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선 지적 재산권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발명한 사람은 재산을 날리고 모방자들만 돈을 번다」는 발명가 들의 하소연이 방송에 여러번 나와도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지 않고선 창조적 노력을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발명가들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이 작은 기업들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작은 기업의 창업은흔히 어떤 발명이나 창안을 계기로 이뤄진다.지난번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으로 「대기업의 현금결제」를 덜렁 내놓은 일은 보기 민망했는데 그런 자리에 「무임승차자들」을 막아 발명가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얘기가 있었으면 자리가 덜 썰렁했을 것이다.
특허는 발명에 주어진 독점적 권리가 창조적 활동을 복돋아 사회의 이익이 커지도록 하는 제도다.창조적 활동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면서,선진국들에선 지적 재산의 범위를 늘리고 거증 책임을 발명가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특허제 도가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특허제도가 여전히 허술하고 관료주의적으로 집행된다.
창조적 재능을 가꾸는 데 특히 발명가들의 창업을 보호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줄 특허제도의 보완을 기대해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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