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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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랑의 비방(비方)은 별로 어려운 일같지 않았다.
『암수 두 마리의 메추라기 염통을 도려내 암컷의 염통은 여성이,수컷의 염통은 남성이 각각 늘 지니고 다니면 두 남녀는 서로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이 염통을 가지고 다니는 한 불화와 갈등도 모면할 수 있을 것이요,그 어떠한 마술 과 주술(呪術)로도 이 두 사람을 서로 미워하도록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 확신에 차있는 단정적인 말투다.
13세기나 14세기까지만해도 마술은 하나의 「뛰어난 능력」으로 대우받았던 모양이다.그것이 15세기로 내려오며 마술은 이단(異端)과 배교(背敎)란 이름아래 재판받기에 이르렀으며 「마녀사냥」은 시작되었다.마술사는 악마로 몰렸고,능력 은 악령으로 전락한 셈이다.
메추라기 염통을 도려내 나눠 갖는 따위 소박한 의식(儀式)은더 이상 신심(信心)의 안식처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는 참으로 기이한 시대가 아닌가.
명문여자대학을 나온 지식 여성인 어머니로 하여금 13세기의 그 비방을 서슴없이 실행케 한 것이다.모르긴해도 어머니 같은 여성이 의외로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미신이라 치부하면서도 그런 묘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쩐지 거기에 신심을 얹고 싶어지는 것이 여성들의 심리다.불확실한 시대를사는 목마름 탓인가.
아리영은 좀 달랐다.
마그누스의 글을 읽고 「희한한 비방도 있구나」 느낄지언정 결코 실행하는 타입은 아니다.그 비방 자체를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메추라기의 염통을 도려내 말리고 어쩌고 할 「행동력」이 없는 까닭이다.
이것이 아리영과 어머니의 차이다.
지성의 차이라기보다 열정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사랑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13세기 아니라 원초의 비방이라도 따랐을 어머니다.
아리영에겐 그런 악착함.끈끈함이 없다.역시 불임성(不姙性)생태인가. 어머니가 유리에 집착한 이유를 알 것같았다.끈끈한 어머니는 끈끈함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물질에 끌린 것은 아닐까.
남편의 제3신이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배달되었다.갓 태어난 송아지 사진이었다.
발그레 연분홍을 머금은 하얀 털발이 물에 젖어 반짝이고 있다.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는 표정이 귀여웠다.
이름을 지어달라고 보낸 것이다.
…백설공주? 스노 화이트? 암소니까 여성적 이름이라야 할 테지. 그러나 두 마디 이름은 부르기가 사납다.
…그럼 하양이? 너무 직설적이다.아버지의 의견을 묻자 정여사랑 서여사와 의논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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