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괴담’ 정부가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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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연휴 첫날인 3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 70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전날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였다. 정부가 2일 긴급 장관합동 기자회견과 시민단체와의 ‘끝장 토론’까지 했지만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광우병과 관련된 정부의 입장이 정권교체 이후 크게 바뀐 탓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로 정치적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며 확고했다. 심지어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부여한 뒤에도 박홍수 당시 농림부 장관은 “(OIE 조치와 관계없이) 독자적 위험 평가를 통해 미국의 광우병에 대한 이력추적제를 점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역주권’ 선언이다.

그러나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축산ㆍ농림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한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실무 협의 성격이고,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협상안이 타결됐다.

정부는 ‘(국제 기준인) OIE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11월 당시 농림부는 ‘미국 쇠고기 안전성 검토’ 보고서에서 “국제 기준에 비해 좀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었다.

정부가 이렇게 갑작스레 입장을 바꾸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동의를 위해 서두르는 바람에 국내 홍보와 의견수렴이 소홀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협상에 참여한 정부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 하나만 나와도 모두 돌려보낸 우리 정부의 조치는 국제 기준과 비교해 볼 때도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협상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오래전이긴 하지만 일본은 자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 측을 설득해 ‘20개월 조건’을 관철했다”고 소개했다.
불안이 가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신동천(예방의학)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인 위험률 제로’는 없다. 하지만 제로로 볼 수 있는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만 보자면 미국 쇠고기로 우리나라 사람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다”며 “위험률이 ‘제로’는 아니지만 ‘무시해도 좋을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번 터지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원전 사고처럼 광우병에 대해서도 과학적 확률과 상관없이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점을 정부가 깨달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희박한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만만찮다. 우 교수는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질병에 관한 한 ‘사전 예방의 원칙’이 중요하다”며 “막연한 공포도 문제지만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부가 그것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 자체라기보다 그 확률을 정부가 국민에게 얼마나 정확히 알리고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창희·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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