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광우병 부풀리는 무책임한 방송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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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부 방송사들이 미국산 쇠고기 재개방을 앞두고 광우병 공포를 자극하는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고 있다. 나라와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의도야 충분히 알겠지만, 지나치게 공포를 조장하면 역효과를 부른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이런 식의 오해가 쌓여 광우병 공포심이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 사람은 95% 광우병에 걸린다” “라면 수프만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뜬금없는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미친 소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미국인은 3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은 광우병이 처음 발병했던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이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공포가 현실화되려면 의학적인 잠복기간을 고려하면 전 세계적으로 인간 광우병 환자들이 2~3년 전부터 집단적으로 쏟아져야 정상이다. 국내 TV 프로그램이 인용한 하워드 라이먼도 주류 과학과는 동떨어진 친환경 극단론자다. 그는 12년 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 광우병이 인류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빗나갔다.

쇠고기 시장 개방이나 광우병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차분히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갑자기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TV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무방비로 쏟아지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일환으로 미국 쇠고기 개방을 반대하는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선진국 모두가 먹는 쇠고기를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

지금은 오히려 수입 쇠고기 검역을 강화하고 원산지 표시와 이력추적 제도 같은 후속 대책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 광우병은 공기나 피부 접촉으로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 과학계와 의학계의 주류 학자들은 에이즈나 독감처럼 인류의 대재앙이 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비현실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충격과 공포를 부추기면 곤란하다. 언필칭 ‘공영방송’이라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균형 잡힌 보도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니 방송이 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