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재산 60대 여성 필리핀서 의문의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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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00억원대 재산을 가진 60대 한국 여성이 필리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서초경찰서와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4월 3일 오후 8시30분쯤 필리핀 바탕가스주에서 한국인 P씨(67·여)가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P씨는 머리에 45구경 권총의 실탄 두 발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황량한 벌판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여권과 현금 400만원 정도가 들어 있던 P씨의 핸드백은 사라졌다.

하지만 항공기명과 이름이 적힌 보딩패스가 들어 있던 종이가방이 발견돼 P씨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 종이가방에는 5만1700페소가 들어 있었다. 경찰은 필리핀 경찰의 수사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 중이다.

◇청부살해 가능성 수사=본지가 단독 입수한 필리핀 경찰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P씨는 3월 30일 딸 A씨와 함께 한 달 체류 일정으로 마닐라에 입국했다. 투자 이민을 위해 영어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사건 당일 P씨는 딸과 헤어진 뒤 실종됐다. 딸과 헤어진 장소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였다. 그러나 총격을 받고 숨진 장소는 남쪽으로 1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탕가스주다.

따라서 경찰은 P씨가 마닐라에서 납치된 뒤 바탕가스주로 끌려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가 “사건 현장 근처에서 흰색 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얼마 뒤 두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진술함에 따라 청부살인업자가 납치·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필리핀 경찰은 특히 ▶P씨를 밴에 태워 110㎞나 끌고 갔고 ▶종이가방에 약 100만원 정도인 5만1700페소가 남아 있었으며 ▶머리의 총상 두 발 중 첫 번째는 살해용이고 두 번째는 확인 사살용으로 분석됨에 따라 단순 강도살인이 아닌 전문가가 동원된 청부살인에 무게를 싣고 있다.

딸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사건 당일 오후 6시쯤 마닐라의 S호텔에 내려 주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헤어졌다”고 진술했다.

◇주변인 조사에 착수=서초경찰서는 “P씨 피살 사건에 의문점이 있다”는 진정이 접수됨에 따라 수사를 벌이고 있다. 우선 경찰은 필리핀 경찰이 용의점을 뒀던 딸 A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필리핀 경찰은 P·A씨가 고용했던 운전사의 진술과 A씨의 진술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A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 중이다.

서초서 관계자는 “A씨를 한 차례 불러 조사했으나 혐의를 둘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A씨와 가족들을 불러 조사하고 계좌 추적과 통화 내역을 조회하는 등 본격적 수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필리핀 주재 한국영사관 측도 “현지 경찰에 확인해 본 결과 정황상 A씨를 의심하고 있으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150억원대의 부동산을 상속하기로 한 P씨의 유서가 변경된 점 등이 확인됨에 따라 피살자 주변 인물 등을 상대로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3월 중순 P씨의 유서가 정상 절차를 밟아 변경됐다”며 “당초 유서엔 상속인이 P씨의 남동생과 외손녀였는데 나중엔 두 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피살된 P씨는 부동산 임대업과 개발 등을 통해 300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필리핀 경찰이 조사가 끝났으니 귀국해도 된다고 밝혀 귀국했다”며 “그러나 현지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억울하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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