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alkholic의 강원도 기행-④ 천년고찰 낙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제 영겁의 봄기운을 누리시라

지난 2005년 4월 5일, 강화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관음성지 중 하나인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염에 휩싸였다. 산불은 원통보전과 범종각을 비롯한 15채의 전각과 보물 479호 동종, 그리고 사찰 주변의 울창한 산림까지 모두 앗아갔다. 낙산사는 그 전에도 화재 피해를 입은 적이 있지만 2005년의 산불은 말 그대로 재앙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낙산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 보물 1호인 숭례문 화재 참사를 겪은 뒤 낙산사도 다시금 세간에 오르내리게 됐다. 올해 강원도는 낙산사의 화재를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고자 ‘4월 5일’을 ‘강원 문화유산의 날’로 선포했다.
오랜 세월 사찰로 살아남는 것의 고단함을 겪어온 낙산사지만 그래도 화사한 봄기운만은 숨기지 못했다. 절로 들어서는 길에는 봄꽃들이 수라도 놓은 듯 피어올랐다.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옆으로는 탄성을 지를 만큼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절에 들어서면 다례헌 앞에 놓인 모금함이 눈에 띈다. 그동안의 복원불사 현황도 알 수 있었다. 다례헌을 지나자마자 왼쪽은 원통보전, 오른쪽은 홍련암․의상대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바로 그 앞 계단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길에서 길을 묻다.’
사람들은 늘, 스스로 선 길에서 또 다른 길을 묻곤 한다. 이 글귀를 보자 내 안에서도 수 가지의 생각이 떠오른다.

‘길에서 길을 묻다’

갈림길 앞에서 가장 먼저 나의 발길을 이끈 곳은 일출명소로 유명한 의상대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 위에 있다. 오봉산 자락에 위치했으면서도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의상대는 예로부터 관동 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양양 산불 때 열기에 화상을 입었던 의상대 관음송도 차츰 살아나고 있다.

의상대에서 바라 본 홍련암

의상대에서 나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따라 300m정도 위로 더 들어가면 작은 암자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홍련암이다. 홍련암은 바닥 한가운데쯤 마루의 작은 판을 열면 관음굴이 보인다. 그곳으로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홍련암 옆에는 방화수와 소화기가 비치돼 있다. 이 같은 소화 장비는 낙산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변로에서 마주한 바다의 풍광

의상대에서 홍련암까지 오고가는 해변 길은 바다의 풍광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좋다.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은 이전의 해변 길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은 산자락에서 막 피어오르는 봄꽃들로 푸름을 더해가고 있다. 화마의 흔적으로 산불 피해 이전의 울창함은 찾을 수 없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아 낙산사도 그렇게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는 중이다.

보타락 앞 연못을 지나 보타전으로 향하는 꽃길

산자락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보타전이 나온다. 보타전은 배산임수의 지형 덕으로 지난 2005년 대형 산불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던 곳이다. 보타전 앞에는 누각 형태의 보타락이 있으며, 그 앞에는 큰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원통보전으로 가기 위해선 보타전과 보타락 사이 길에서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된다. 지난 산불 때 소실된 홍예문과 심검당, 취숙헌 등은 복원되거나 신축돼 있다.

복원된 원통보전으로 가는 길

원통보전 앞 7층 석탑

법당인 원통보전은 복원돼 지난해 11월 낙성식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주위를 쓸어버린 화마의 흔적은 이곳에도 여실히 남아 있다. 타고 그을린 노송들은 까만 뿌리와 줄기만을 드러내고 있으며, 덩그러니 홀로 선 원통보전은 쓸쓸해 보일 지경이다. 그나마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7층 석탑이 벗이 되어 주는 듯하다. 7층 석탑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길에 파손된 범종은 신도들의 복원불사로 새롭게 제작돼 종루에 걸려 있다. 지난 3월 29일에는 이곳 낙산사에서 숭례문 화재 49재를 지냈다.

낙산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수관음상

원통보전 옆, 산자락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해수관음상. 낙산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것으로 높이가 무려 16m에 이르는 거대한 관음상이다. 낙산사 성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여행객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가장 높이 위치해 한쪽으로는 동해, 다른 한쪽으로는 낙산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빼어난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낙산사는 지금 외형상 17세기 후반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와 같은 가람배치도 형태로 복원되는 중이다. 올해 말이면 모든 복원공사가 끝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