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도보기행 ⑤ 토리노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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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강변을 따라, 이탈리아의 옛 왕족처럼…

이탈리아 여행가 권오경(32)이 마지막으로 준비한 곳은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인구 85만의 작은 도시 토리노다. 우리에게는 ‘2006년 동계올림픽’ ‘2007년 그랑 프리 파이널 토리노’처럼 국제 빙상 경기가 열린 도시로 더욱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로마나 기타 휴양도시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행책자에 소개된 내용이라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FIAT가 있고 이탈리아 축구 최강팀 유벤투스가 소속된 지역이라는 것 정도다.

토리노의 가장 큰 매력은 포강(江)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곳은 한때 이탈리아 왕국의 막강한 수도였다.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을 길게 따라 걸으면 토리노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놀라게 하는 것은 토리노의 토속 초콜릿이다. 향기롭고 진한 맛이 일품인 기프트 초콜릿은 토리노의 유명한 특산품이다.
좀 더 다양한 특산품을 보고 싶다면 강줄기 주변의 샛길을 포기하고 토리노의 응접실이라고 불리는 '산 카를로 광장'으로 빠져나와 보자.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도시적 세련미가 어우러진 광장은 거대한 쇼핑지구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서울의 명동과 비슷하지만 보세상가 물건의 질이 명품 못지않다는 것이 특별하다. 뛰어난 디자인의 물건들이 서울이나 로마보다 배는 더 저렴하니 이탈리아 북부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토리노에서 쇼핑을 즐길 것을 추천한다.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 거리는 비아 로마(via Roma)다. 이곳은 토리노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활보하는 거리로 저렴하고 멋진 상품들로 가득하다. 유래별로 특화상품을 판매중인 초콜릿 상점들, 고도의 세공술을 자랑하는 액세서리 가게,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옷집, 가구점, 도자기 판매점 등등 ‘비아 로마’에서의 쇼핑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그것보다 개성 있고 매력적이다.
쇼핑을 미뤄두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강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다. 강변을 따라 길에 늘어선 다리며 건물들은 모네의 풍경화보다 더욱 아름답다. 삼각대 펼쳐가며 어렵게 사진을 찍을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다.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파스텔 톤 풍경화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강변에 취해 걷다보면 이탈리아 통일을 상징하는 높이 167m 의 '몰레 안토넬리아나 탑' 이 나온다. 곧이어 이탈리아의 초대왕인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가 출생한 ‘카리냐노 궁전'도 나오는데 이곳은 최초의 의회가 열렸던 이탈리아 왕국 초기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포 강변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중 가장 동화적인 곳은 '카르텔로 발렌티노 식물원'이다. 이곳에는 토리노 사람들이 매일 산책을 하러 나오는 '발렌티노 공원' 이 있다.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패기 있고 건강한 토리노 사람들은 산책로를 개발하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토리노 시내가 훤히 보이는 '바실리카 디 수페르가 성당'은 토리노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인 산책로 중 하나다. 기존에 있는 건물이나 도로를 정비하여 만든 산책로는 공원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과 프라이드를 제공한다. 한정된 소재를 개발하고 응용하여 새로운 산책로를 만들어 내는 것은 토리노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우리나라의 빙상 선수들이 경기를 펼쳤던 '팔라벨라 빙상경기장' 도 지금은 토리노 주민들의 건강시설로 자리 잡았다. 공원이나 빙상뿐만이 아니다. 토리노 사람들의 산책은 강 위에서도 이루어진다. 여느 도시와 다르게 이 도시 사람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운동을 즐긴다. 카누경기를 연습하는 청년들부터 나룻배 위에 앉아서 그리씨니(이탈리아의 얇고 기다란 빵)와 홍차를 즐기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강변 문화를 누리고 있는 토리노 사람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정한 여유와 건강을 챙길 줄 아는 그들의 삶이 유쾌해 보인다.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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