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세이 상 타 한국 가려 꼬박 이틀 기차 타고 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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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중국 상하이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제2회 성균 한글 백일장’ 행사에선 중국에서 한국어(조선어)과를 개설하고 있는 대학들이 선발해 보낸 65명의 대학생이 ‘나눔’이란 주제로 글짓기를 했다. 조선족은 한국어과에 입학할 수 없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전원 중국인이다.  [사진=이충형 기자]

제2회 성균 한글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은 난징대 2학년 탄제<右>와 리진화 교수.

중국 동북쪽 끝에 있는 헤이룽장성 치치하얼대 한국어과 3년생 리쯔(李子·25·여)는 23일 난생 처음 상하이에 왔다. 지도교수 팡샹위(方香玉)와 함께 21일 고향을 출발해 36시간 동안 기차에서 생활했다. 치치하얼대의 대표인 리쯔의 목표는 한글 백일장에서 입상하는 것이다. 그는 “보름 동안 날마다 한글로 작문연습을 했다. 꼭 입상해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24일 중국 상하이 시내 앰배서더 호텔에서는 ‘제2회 성균 한글 백일장’이 열렸다. 성균관대 사범대가 주최한 것이다. 조선족은 참가 자격이 없고 중국 대학생들만이 대상이다. 한국어과를 개설한 중국 56개 대학에서 교내 선발과정을 거친 65명의 학생이 왔다.

산둥대 3학년 천위(陳鈺·21·여)는 백일장이 시작되기 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한글 속담 수백 개가 적힌 종이쪽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있었는데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이명학 사범대학장이 고사장 앞에 있던 칠판의 천을 걷어내자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이날의 글짓기 주제는 ‘나눔’이었다. 지난해 KBS ‘도전골든벨’ 중국 대회 우승자인 리차오(李超·22·베이징언어대3)는 “나눔이란 주제가 예상 밖이어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평가위원인 성대 원만희 교수는 “중국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높아 까다로운 주제를 줬다”며 “그런데도 주어진 2시간 동안 대부분 2000자 이상씩을 써내 놀랐다”고 말했다. 박정하 교수도 “한글 글짓기인데도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날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탄제(譚潔·20·여·난징대 2)는 “한국드라마 광이었던 고교 짝꿍의 영향으로 한국어에 빠지게 됐다”며 “한국에 유학 가서 드라마 세트장에도 가보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지야페이(22·여·텐진사범대 3)는 교통사고로 죽은 대학생 아들의 뜻에 따라 장기를 기증한 어머니와 그 장기를 받아 생명을 건진 사람의 나눔을 묘사해 은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 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뤄위안(羅媛·23·여)이 전액 장학금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문이 다 났다”며 “학생들 사이에서 이 대회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높아가는 한국어 열기=1990년대 초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5~6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류(韓流)가 유행하고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젠 50개 대학을 넘어섰다. 창춘대광화학원은 현재 680명인 한국어과 총정원을 다음 학기부터 1200명으로 늘린다. 신의주 근처에 있는 랴오닝대의 경우 한국어과 학생이 800명이고, 한·중 관계를 연구하는 단과 대학까지 세웠다.

광둥외국어 무역대 취안융젠(全永根) 교수는 “한국과 중국 기업들로부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졸업생 구인전화가 빗발치는데 보내줄 학생이 없다”며 “중국에서 한국어 전공자의 취업률은 거의 100%”라고 말했다.

저우위보(周玉波·33·여) 대외경제무역대 교수는 “나는 95년 한국어 웅변대회 우승을 계기로 한국에서 박사 학위도 받았고 이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어 학습의 동기를 불어넣어줄 이런 대회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하이=이충형 기자



이명학 성대 사범대학장
“한국어 전공 중국학생 1만 명 대회 통해 한국통 많아졌으면…”

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백일장은 성균관대 이명학(사진) 사범대학장의 아이디어였다. 이 학장은 “올해엔 지난해보다 더 많은 학생이 참가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며 “한국어를 전공하는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한글 공부 붐을 불러일으킨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까지 와서 한글 백일장을 하는 이유가 뭔가.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다. 한국과의 경제 교류도 팽창하고 있다. 한류(韓流)까지 겹치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대학생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들을 거의 방치해 왔다. 언어를 알게 되면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 중국 내에서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대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중국에 한국어 전공자가 얼마나 되나.

“1회 대회 때 파악한 게 약 5000명이다. 그런데 중국인 교수들 얘기가 2년, 3년제 대학까지 다 합치면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 학생들의 한글 작문 수준이 꽤 높아 보인다.

“그렇다. 놀라울 정도다. 이들은 과외를 한 게 아니라 한국 소설책을 읽고, 써보고 하면서 글 솜씨를 높인 것이다. 우리 교육도 반성할 바가 많다. 앞으로 이 대회가 더욱 성장해 중국 내 한국통을 많이 길러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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