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TV를 메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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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03면

강호동(38)이 24일 열린 2008 백상예술대상에서 방송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건 강호동 개인은 물론 이 상의 역사에서도 매우 뜻 깊은 일이다.올해로 44회를 맞은 백상예술대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예능 프로그램이나 코미디언, 개그맨, 혹은 MC에게 대상을 준 적이 없다. 몇 차례 교양프로그램이 대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기자나 대작 드라마가 대상을 수상했다.

백상예술대상 방송 대상 탄 MC 강호동

하지만 올해는 강호동이 대상을 차지하기에 적절한 상황이 연출됐다. 일단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 3사를 막론하고 모두 자사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 KBS·2TV ‘해피 선데이’의 ‘1박2일’, MBC·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SBS·TV ‘스타킹’이 그렇다. 게다가 ‘1박2일’과 ‘무한도전`의 무한경쟁이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상태다.

물론 올해의 드라마 중에서 지난해 대상 수상작인 ‘주몽’, 2006년의 ‘내 이름은 김삼순’ 정도로 압도적인 위상을 뽐낸 작품이 없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어지간한 드라마로는 지금 강호동이 뿜어내는 포스를 당하기 힘들었을 거란 게 심사위원단의 중론이었다.

대체 어쩌다 강호동이 대세가 됐을까. 말주변을 놓고 말하자면 당대 최강의 신동엽이 있다. 게스트에 대한 친화력이라면 만인의 친구 유재석을 당하기 어렵다. 안정감이라면 김용만이, 순발력으로는 김제동이 최강으로 꼽힌다. 인물이라면 이휘재를 당할 수 없고, 분위기 장악에는 탁재훈이 발군이다. 물론 이 많은 MC들 중에서 완력이나 체력으로 강호동을 당할 자는 없겠으나 힘으로 MC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신기한 것은 그 자신에게 물어도 비슷한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강호동의 히트작 중 하나인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거쳐 현재 ‘황금어장’의 CP를 맡고 있는 여운혁 PD(MBC)는 “여전히 입버릇처럼 다른 MC들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그가 꼽은 강호동의 가장 큰 강점은 “사람의 모든 면을 모든 방향에서 관찰하려고 드는 강렬한 호기심과 늘 새롭게 변신하는 야심”이다.

SBS·TV ’야심만만’으로 강호동을 끌어들인 최영인 PD(SBS)도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가졌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려 하고, 뭐든 하나를 배우면 어떻게든 써먹는 재주를 지녔다.”

강호동. MBC·TV ‘오늘은 좋은 날’로 방송계에 들어온 지 15년이지만 이미 그 훨씬 전, 18세 때 천하를 호령했다.
1990년에서 92년 사이 여섯 번의 민속씨름 천하장사 대회 중 네 차례를 석권했다. 씨름 명인들에 따르면 씨름은 혼자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적절하게 밀 땐 밀고, 당길 땐 당겨야 경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적절한 밀고 당기기, 이거야말로 방송 진행의 요체가 아니던가.

학업을 계속하겠다며 하루아침에 씨름판을 떠나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막상 받아준다던 학교가 갑자기 말을 바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도 했다. 지인의 가게를 밤에 경비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쪼들린 적도 있었다. 그때 “네가 방송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내가 방송계를 떠나겠다”며 ‘규 라인’ 입문을 강권(?)한 선배 이경규가 없었다면 현재 그의 모습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는 프로그램 하나를 거칠 때마다 한 가지씩 재주가 늘어났다. ‘웃는날 좋은날’에서 자신을 빼닮은 소년 `뽀동이`의 “행님아∼” 소리에 장단을 맞추던 시절을 지나 KBS·2TV ‘뷰티풀 선데이’에서는 위협적인 체구를 애교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KBS·2TV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SBS ·TV ‘X맨’을 통해 젊은 연예인들을 통솔하는 리더형 MC로 재능을 보여 ‘1박2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야심만만’에서 익힌 신문(?) 기술은 오늘날 ‘무릎팍 도사’의 초석이 됐다. 여전히 강호동은 진화 중이다. 이제 ‘스타킹’에서는 연예인 아닌 일반인들을 구슬리는 기술까지 선보이고 있다.

2003년, 정연주 KBS 당시 신임 사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 저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방송의 상업화’에 일침을 날렸다. 지금의 강호동은 더 커지고 더 강해졌다. 당연히 KBS에도 나온다. 이상한 건 “왜 여기저기서 강호동만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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