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퇴직금이 담보권보다 우선"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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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업이 부도를 내 은행이 담보권을 행사하려해도 근로자들의 퇴직금이 먼저 지급돼야 한다.』 최근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 하나가 금융기관과 근로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각 은행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추가 담보 확보 방안 마련에 서둘러 나서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은행 대출 심사가 더욱 강화될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대법원은 부도 업체인 D정밀 직원9명이 중소기업은행을 상대로 지난 93년12월2 7일 낸 소송에 대해 지난 7월25일『중소기업은행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89년 3월 이후의 종업원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은행들은 판결 전까지 부도 기업의 담보물을 처분할 때 종업원들에게 3개월분의 임금.재해보상금과 함께 3개월분의 퇴직금만 돌려줘 왔다.
8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30조2항의 「최종 3개월의 임금.
퇴직금.재해보상금이 질권.저당권에 의해 담보된 채권.조세채권등에 우선 변제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D정밀 직원들은「3개월」이란 수식어는「임금」에만 걸리는 것이지 퇴직금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므로 퇴직금 전액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했고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은행들은 최근 판결 내용에 맞춰 여신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일선 점포에 담보 심사를 엄격히 하도록독려하고 있다.은행들은 또 은행연합회를 통해 헌법재판소에 이같은 판결이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헌법 소원을 내놓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에 대해 담보 가액을매길 때 종업원 퇴직금을 전액 감안하도록 일선 점포에 시달했다』면서『근로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소기업대출이 까다로워져 기업들을 어렵게 하는 판결』 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아직까지는 담보를 평가할 때 퇴직금 부분을 빼지않고 있으나 판결 이후 기업 심사 서류에 종업원 수와 퇴직금 누계액을 기재토록 해 금액이 큰 기업에 대한 특별관리에 들어갔다.상업은행 장광소(張廣所)상무는 『판결 내용대 로 대출심사에반영하면 담보를 댈 수 있는 중소기업이 별로 없을 것』이라며『심사 규정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난감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의 반응은 더욱 딱하다.콘크리트관 제조업체인 정주플륨 정영원(鄭榮元.43)사장은『중소기업에 대한 정책 금융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은행의 신용대출 기피 현상은 여전한 상태에서 이같은 판결이 나와 은행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 같다』면서『실업보험등 종업원 복지관련 장치를 서둘러 개발,이 문제가 중소기업자금난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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