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터놓고 만난 지구촌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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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디서 오셨어요?』『나이지리아에서요.』『당신은 무얼 하십니까.』『미국의 환경단체에서 일합니다.』 짧은 영어 한마디로 형형색색 모두 다른 얼굴색의 여성들이 금방 친구가 된다.
29일 낮 베이징(北京)국제공항 입국심사장은 금세기 최대의 여성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온 여성들로 삽시간에 인종전시장으로 변했다.
고수머리를 수도 없이 가늘게 땋아내린 검은 피부의 여성들,원색의 T셔츠와 샌들 차림의 백인 여성들,일본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얼굴만 봐서는 구분이 안되는 아시아 여성들….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 앞서 열리는 비정부간조직(NGO)포럼에참가하는 민간여성들답게 패션도 다채로워 즉석 패션쇼를 열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작은 바구니에 갓난 딸을뉘어 들고 있었다.
2개월짜리 아이를 안고 수만리길을 날아온 그녀는『무슨 일이 있어도 여긴 와야죠』라며 활짝 웃었다.
마치 딸에게만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세상을 그대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란 주제아래 자유분방하게 펼쳐지는 NGO포럼은 여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든 것이 등장한다.
여성과 정치니,여성과 경제발전이니 하는 거창한 접근에서부터「케이크와 소시지 제조법에 대한 워크숍」「집에서 만드는 음식의 영양과 안정성에 대한 패널」등 평범한 주부의 피부에 와닿는 생활이야기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러시아 매스컴의 선정주의」같은 아주 전문적이고 지역적인 이슈에 대한 토의도 있고 여성들만의 서커스등 각종 공연행사도 펼쳐진다.
이같은 행사가 열흘간의 NGO포럼 기간중 총5천여개라니 화이로우(懷柔)라는 중국의 작은 도시는 바로 「여성문제의 용광로」가 되는 셈이다.
우여곡절끝에 마침내 30일 개막된 NGO포럼은 얼마간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는 정부간(GO)회의에 비해 아주 낮고 평범한시각으로 여성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회를 거듭할수록 규모를 더해가는 이 지구촌 여성들간의 허심탄회한 축제는 여성문제를 보통 주부들의 손에까지 쥐어줄 수 있는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北京=李德揆기자.생활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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