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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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31)오빠.아버지는 왜 저런나무만을 생각하는 건지 몰라.겨울이 오면 잎을 떨어뜨리는 그런나무도 얼마나 많은데.가을이 오면 단풍들고 첫서리 내릴 때면 그 잎마저 다 떨어뜨리고 마는 그런 나무가 얼마나 많아.그렇다고 결코 그 나무가 죽은 게 아니잖아.봄이 오면 다시 잎을 틔우며 푸르고 푸르게 자라나잖아.변함없이 강물이 그렇듯이.
많을 때는 넘쳐서 흘렀다.가뭄이 들면 바닥의 모래가 손에 잡힐 듯이 졸아들기도 했다.그러나 강물은 변함이 없었다.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이었다.흘러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높은 곳을 탐하지도 않았다.가뭄과 홍수를 그렇게 견디다가 겨울이 오면 또 그 추위를 피하지 않고 꽁꽁 얼어붙었다.그래도 강물은 그 얼음밑을 흐르고 있지 않았던가.
두 팔에 불끈불끈 힘을 주면서 빨래를 쥐어짜고 난 은례가 명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제,갈까?』 등에 와 몸을 기대면서 아이가 업으라는 시늉을 했다.강바람을 맞아 바알간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은례가 말했다.
『너,걸어가겠다고 해서 데리고 나왔잖아.혼자 못 갈 거면 여기 강가에 버리고 간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웃으면서 은례는 빨래 광주리를 이고 일어섰다.버리고 간다니.누가 있어 버리라고 한다고 버릴 거며,빼앗아 간다고 빼앗길까.
자식 길러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더니 그게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싶게,아이는 이제 그녀의 가슴에서 기둥이 되어 있었다.어떻게 이걸 두고 한시인들 살까 싶은 것이다.
냇가를 나온 은례는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를 앞세우고 밭에서 보리가 넘실거리는 길을 걸었다.전에 남편이 그랬다.
『나 닮은 아들 낳으면 안 돼.』 『무슨 소리예요?』 『나같은 아들 낳으면 안 된다니까.』 『왜요?』 『나보다 더 잘난 아들 낳아야지.』 남편이 이 아이를 보면 무어라고 말할까.어쩌자고 빼써도 그렇게 빼썼니,누가 제 애비 아니랄까.사람들의 그런 말이 틀리지 않게 아이는 아버지를 너무나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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