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우리에게 미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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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전에 미국 뉴욕타임스에 주한미군의 범죄가 한국의 국내법 절차에 따라 처리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이에 대해 한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국내 언론은 기사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기보다 문제의 근원이 사태를 무책임하게 보도해 여론을 자극하는 무책임한 한국언론에 있다는 주한 美대사의 발언을 부각시켰다.예상했듯이 다음날 국내모든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이같은 발언을 통박하 고 나섰다.
사실상 기사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민들의 분노와 유감이 과거 필리핀에서처럼 미군기지 폐쇄논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이다.아울러 한국민이 다분히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족이라는 지적도 눈길을 끈다.기사의 내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많은 이들도 이점 만큼은 공감하리라생각된다.
주한미군이 여타 해외주둔 미군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것도 사실이고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 불공정한 것도 사실이다.따라서 韓美 양국정부는 이미 이를 개정하기로 합의한 바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에 대한 분담금을 일본보다 우리가 적게 내는 이유를 미국의 전략적 계산에 따라 미국측도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는 적절치않다.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미군이 성가시다고 철수해주길 요구해도 미 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눌러앉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다는 말이다. 미국 언론과 주한 美대사의 발언이 사태를 균형있게 보지 못한 편파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지적을 한국민의 감정적 성향이 양국관계에 이롭지 않다는 고언(苦言)으로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다.단순히 또 한차례의 푸닥거리로 치부하고 넘어간다면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비이성적인 면모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는 우리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유달리 신경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이들이 우리를 공정하게보아주길 기대하기에 앞서 우리부터 이들의 한국인식에 보다 민감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결정할 美中관계가 만만치 않게 흘러가고 있으며 양국간 알력이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의 안보 기조(基調)가 어디에 있는지 좀더 냉철히 생각해 봐야 한다.우리에게 미국은 감정적 이유로 앙금을남기기엔 여전히 중요한 존재다.
吉炡宇〈本社전문위원.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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