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마지막 히피 음악가 제리 가르시아 추모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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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히피 문화는 30년만에 종말을 고했다.』 지난 9일 전설적인 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제리 가르시아가 53세로 타계하자 히피의 고향 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시베리에는 조기가 올려졌다.히피,마약,젊은이들의 반항을 지칭하는 반문화의 교주로군림해오던 가르시아는 헤로인 중독으로 입원중 심장병 합병증으로조용히 숨을 거뒀다.
60년대 나왔던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반을 다시 제작한 CD들은 모두 동이 났고 낡은 LP들은 천정부지로 값이 뛰고 있다.그가 묻힌 LA그리피스 파크에는 매일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가르시아가 디자인했다는 넥타이와 그의 이름이 들어간 「체리 가르시아」아이스크림도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미국인들이 가르시아에 이처럼 열광하는 것은 그가 60년대부터젊은이들에게 준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을 즐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가르시아를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어렸을 때 그가 디자인한 넥타이를 매고 다니며 그의 음악을 즐겼다』고 말했다.
스페인계 재즈 음악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가르시아는 로큰롤과 마약을 항상 손끝에 달고평생을 살아왔다.
가르시아는 「데드 헤드」족에겐 「팝 문화의 성인」이자 「데드교회(60년대 로큰롤 음악과 마약으로 밤을 지새우는 파티)의 교주」로 추앙받아왔다.
초기엔 블루 그래스(블루스와 컨트리 음악을 접합한 팝 음악)를 연주하며 난해하지 않은 로큰롤을 제작해온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은 그러나 영원히 주류에 들지 못했다.
가르시아는 65년 「그레이트풀 데드」를 결성한 이래 톱10에들어간 히트곡도 87년 『터치 오브 그레이』 한곡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공연을 벌이는 「로드밴드」로 끊임없이 팝송의 컬트를 만들어왔다.
蔡奎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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