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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슈바이처’사랑은 사랑을 낳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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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아랫줄 가운데)이 2003년 겨울 영등포 쪽방촌에 위치한 요셉의원 앞에서 노숙자들을 진료하던 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요셉의원 제공]

“선우경식 원장님의 소식을 접하며, 이제껏 어려운 사람을 돕지 못한 제 무관심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20여 년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펼친 ‘영등포 슈바이처’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19일 여의사인 이보은씨는 요셉의원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종합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후 현재 작은 병원에서 일반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경험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라며 자원봉사 의사를 밝혔다.

선우 원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요셉의원은 되살아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남을 위해 살다 간 선우 원장의 삶에 감동받은 의사와 시민들의 자원봉사 참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자신을 20대 후반의 사회 초년병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월급 일부를 모아 언젠가는 뜻 깊게 쓸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요셉의원을 알게 됐다”며 “매달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작은 힘이라도 되어드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8년째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변수만(69)씨는 “평소 자원봉사 문의가 한 통도 없던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원장님이 돌아가신 이후 하루에만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원장님이 지금도 큰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라고 울먹였다.

기존 자원봉사자들도 요셉의원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요셉의원에서 2년째 무료 진료에 동참하고 있는 피상순(54·여)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나는 불교 신자인데도 원장님의 삶에 감동받아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그 뜻을 받들어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요셉의원에는 후원금도 속속 답지하고 있다. 선우 원장이 별세한 18일 하루에만 40명가량이 인터넷상으로 후원 의사를 밝혔다. 병원에는 “저도 넉넉하지 않지만 한 달에 1만원, 2만원이라도 후원하고 싶은데 인터넷에 적힌 계좌로 보내면 될까요” “원장님 영혼을 닮아 좋은 일을 손톱만큼이라도 하고 살겠다”는 등 시민들의 후원 의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책도 검토되고 있다. 방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빈소에 보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민관이 보다 긴밀히 협력해 사회적 취약층에 대한 지원 및 자활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이날 빈소를 찾아 “신문을 보고 이런 분은 찾아 뵙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왔다.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9, 20일 이틀 동안 자원봉사자와 가톨릭 신자 등 2300여 명이 선우 원장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장례미사는 21일 오전 9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서 열린다.

강기헌·임주리·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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