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애 넘는 ‘장애인 창작공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장애인 미술가들이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감상평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혜영·김병일씨, 류제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상임이사, 임기옥·김영수씨,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장. [사진=최승식 기자]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된 근육장애인(지체1급) 김영수(54)씨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송파구 서울장애인 미술창작 스튜디오에 있다. 잠실종합운동장의 한 구석에 위치한 이곳은 김씨를 비롯한 14명의 장애인 미술가들에겐 ‘꿈의 창작 공간’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472㎡ 규모로 문을 열었다. 현재 운영은 한국장애인미술협회에서 책임지고 있다.

김씨는 이곳에서 5㎡ 남짓한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려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1974년 근육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마비가 목 밑까지 진행된 92년 붓을 입에 물었다. 서양화와 누드 크로키를 주로 그리는 그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과 20여 차례의 그룹전을 열었다. 다른 근육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19일 서울시 장애극복상 본상도 받았다. 김씨는 “나의 불편함에 대해 좌절이나 비관을 하기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김씨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목판을 깎아 판화를 만든다. 먹 가는 소리, 연필 긋는 소리, 붓이 화판에 닿는 소리가 들리고, 물감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은 비장애인 미술가들의 화실과 차이가 없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시실에는 장애인 창작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20여 점이 걸려 있다. 24일부터 열리는 ‘장애인의 날 기념 전시회’에선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일반에 공개한다.

장애인 창작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김병일(52·지체3급)씨는 ‘나비야! 독도가자!’라는 제목의 시리즈 그림을 제작 중이다. 그는 93년 호적을 독도로 옮겼을 정도로 독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다소 좁지만 나만의 공간을 얻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서예활동을 하는 김충현(57·지체1급) 장애인미술협회장은 “자신들의 고통에 삶의 가치를 담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공간”이라며 “작품 전시회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꿈과 희망을 얻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최선욱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