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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대 평생회원권’ 남발…무리하게 몸집 키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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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22면

6일 캘리포니아 와우 명동지점을 찾은 회원들이 셔터가 내려진 피트니스센터 앞에서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유리벽에는 ‘부도처리’ 안내문과 피해 보상을 위해 서명에 동참하라는 글이 붙어 있다. 신인섭 기자

“직원도 속고, 회원도 속았다.”
14일 부도로 문을 닫은 국내 최대 규모의 헬스클럽 ‘캘리포니아 와우 피트니스센터’(이하 캘리포니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직원들은 부도 하루 전날까지도 신규 회원 모집에 열을 올렸다. 6개월~1년의 단기회원에게 40만~60만원을 추가로 내면 평생회원으로 ‘승격’해 주겠다며 세일즈에 나섰다. 트레이너들은 강의 시간에 맞춰 평소처럼 출근하다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회원 4만7000명 피트니스센터 ‘캘리포니아 와우’ 왜 무너졌나

부도 다음날인 15일 오후 2시, 기자는 캘리포니아 명동지점을 찾았다. 명동지점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회원들은 하나같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운동기계는 멈춰 있었고, ‘부도처리’라고 쓰인 흰 종이만 정문 유리벽에 여러 장 붙어 있었다. 부도 난 지 하루가 지났으나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하고 운동복 차림으로 들른 회원들은 발길을 돌렸다. 일부는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압구정· 강남점의 상황도 비슷했다.

도대체 어떻게 캘리포니아와 같은 초대형 피트니스센터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회사 직원은 물론이고 회원들은 왜 부도 하루 전날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 내막을 추적해 봤다.

캘리포니아는 2000년 9월 명동 1호점을 시작으로 압구정점(2001년), 강남점(2006년)을 차례로 열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에릭 르빈 회장이 직접 경영하다 2006년 9월 오모(43)씨에게 이들 점포 3곳을 매각했다. 오씨가 회사를 인수한 시점은 국내에 몸짱 열풍이 불던 때였다. 화려한 건물 외관에 호텔급 시설을 갖춰 헬스클럽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했다. 등록 회원 4만7000여 명에 비·박중훈·한채영 등 인기 연예인이 이용한다고 소문나 유명해졌다. 캘리포니아의 부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회사 대표인 오씨를 비롯해 주요 경영진은 부도 직후 연락이 끊겼다. 강남구 신사동의 본사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직원들도 자취를 감춰 접촉이 불가능했다. 취재 과정에서 S회계법인이 3월 작성한 감사 보고서를 입수했다. 회사 재무제표를 살펴보니 지난해 매출 250억원에 2억7600여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월까지 사모조합에 갚아야 할 부채만 30억원이 넘었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도 수십억원에 달했다.

감사 보고서를 함께 검토한 회계사 김상기씨는 “10년 동안 100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오씨가 회사를 인수했으나 영업 실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오씨가 회사 경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수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S회계법인은 회사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무재표에 대해서는 의견표명을 보류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감사 보고서를 작성한 회계법인이 의견 자체를 내놓지 않은 것은 회사가 언제 문닫을지 모를 정도로 경영이 위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경영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내부 사정을 잘 알 만한 관계자들을 수소문했다. 어렵사리 중견 간부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부도는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그간의 경영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월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회원이 많이 늘어나는 봄에는 월 20억~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비수기에는 10억원 안팎에 머물렀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매출을 초과하는 때가 많았다. 인건비 10억원에 건물 임대료와 공과금이 6억원이 나갔다. 그 외 부채 상환비, 운영 잡비 등 다른 비용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했다.”
오씨가 회사를 인수한 직후인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근무한 전직 간부 B씨의 증언.

“캘리포니아가 이익을 내는 우량 회사였다면 에릭 회장이 왜 오씨에게 회사를 넘겼겠나? 2006년 회사 인수 시점에 이미 캘리포니아는 부실했다고 봐야 한다. 오씨가 화려한 외관만 보고 덥석 물은 것이다. 특히 직원들의 고용승계와 퇴직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떠안았다.”
B씨는 “어려운 형편에서 출발했지만 경영을 합리적으로 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평생회원권을 남발하고, 재정 상태를 감안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덩치만 키우는 정책을 펴 수렁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명동지점이 문을 열었을 때 평생회원권의 가격은 등급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다양했다. 최고급 서비스를 소수의 VIP 회원에게 제공한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생회원권은 덤핑 가격으로 팔려 나갔다. 피트니스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가격 경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평생회원권 가격을 100만원대로 내렸다. 늘어나는 부채와 고정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당장 쓸 돈이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평생회원 모집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월회원이 평생회원으로 전환하면서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급감했다. 급기야 건물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 직원들의 임금도 3개월째 주지 못했다.

경영진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직원들에게 평생회원 유치를 독려했다. 직원들에게는 “곧 수백억원의 투자를 유치할 예정”이라고 말해 왔다. 오씨는 두 달 전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프랜차이즈 2개, 직영점 2개를 더 늘려 장기적으로는 전국에 80~100개의 지점을 거느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장밋빛 전망을 말하던 오씨는 17일 명동지점에서 회원들과 면담하기로 약속했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해 회원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캘리포니아 와우 보상을 위하여’라는 카페를 만들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제는 피해보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조본부 김기범 팀장은 “부도 처리된 업체의 경우 사업자가 지불능력이 없어 보상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금을 카드로 할부 결제한 회원은 카드회사에 남은 할부금에 대해 납부 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정도다. 회원들은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소송을 할 것이냐, 아니면 회사 경영진·채권단과 접촉해 클럽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찾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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