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평양에서 워싱턴 가려면 서울을 거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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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상호 설치하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 핵의 검증 이전이라도 대북 제재 가운데 일부는 해제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어떻게 해서든 북핵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의 제의도 이런 미국의 전향적 판단에 따른 북·미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남북, 북·미 관계가 새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제의에 북한이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미국만 상대하고 남측은 봉쇄한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 연주는 허용하면서 남측 국가는 거부했다. 미사일 발사 등 각종 대남 위협에 이어 이 대통령을 ‘역도(逆徒)’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하고 있다. 특히 부시 미 정부는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전례 없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통미봉남’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만하다. 상당 기간 남북관계에선 ‘긴장’이 조성되고, 북·미 관계에선 ‘훈풍’이 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국면은 지난 10년간의 퍼주기식·눈치보기식 대북 협상의 폐해를 감안하면 감수할 필요도 있다. 한국이 미국과 명실상부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스러운 한반도 정세는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가 병행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향후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보다 더 좋은 우방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북한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해서야 되겠는가. ‘평양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길은 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북한에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한·미 간 갈등을 유발할 정도로 대북 관계 개선에 매진한 적이 있다. 한·미가 진정한 동맹관계라면 앞으로 이런 문제로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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