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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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25)『일본이 불바다가 된다봐라.이제 새카맣게 하늘을 덮으면서 폭격기가 날아올테니까.그런데도 일본은 일억옥쇄니,본토사수니 하고 있다 죽어서, 다 죽었으면 그뿐인데,그때 무얼 하자고 무슨 놈의 나라를 지킨다는 건지 모르지.죽어서 귀신이 나라 지키나.』 1944년 6월15일을 마악 넘어선 시간이었다.오전0시38분,칠흑같은 어둠을 뚫고마흔 여덟대의 미군 B-29가 일본 본토를 향해 날아들었다.후쿠오카에서부터 북규슈까지,공격목표는 드넓었다.
미국에 의한 일본 본토에 대한 전략폭격은 규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 대한 이 최초의 기습은 폭격기가 본토에 도착하기 이전에 일본에 의하여탐지되었다.비행기의 발진지는 중국대륙이었다.이것을 제주도에 배치되어 있던 전파경계기가 포착했던 것이다.
일본에 급보가 날아들었다.15일 저녁5시30분.규슈전역에 경계경보가 내려졌고,이어서 일반인에게 공습경보가 전해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일본은 대지를 뒤흔드는 비행기의 폭음에 휩싸였다. 4발 초중폭격기 B-29가 일본 상공에 최초로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이었다.
이 최초의 공습을 받고 북규슈의 여러 지방에 내려진 공습경보시간은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났다.와카마쓰에는 0시30분에 경보가 내려졌지만 도바다에는 그보다 조금 빠른 0시24분이었다.
사람들에게 경보가 전해지고 나서 얼마후인 0시38분 제1번기가 와카마쓰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다.이때 시내의 등화관제는 완벽했다고 타임지는 전하고 있다.이미 공습경보가 발령된 후였기 때문이다.
첫 B-29의 공격이 목표로 했던 제철소의 피해는 경미했다.
그 운영이나 생산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을 정도였다.그러나 이 지역의 철도와 통신은 일시 불통되었고 아사히카세 방직 공장을 시작으로 시가지에는 불길이 치솟으며 2백7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시가지의 모든 불빛을 끄거나 차단한 등화관제 때문에 당시 폭격기의 미군 비행사들은 거의 육안에 의한 공격이 불가능했다고 전해진다.더군다나 시가지 하늘은 연기과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렇게 해서 육안에 의해 목표물을 공격한 폭격기는 15대였다.나머지 32대의 폭격기는 레이더에 의한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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