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18대 국회의 환경 문제 예상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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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 18대 국회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예상 성적은 또다시 낙제다. 4월 9일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245명의 지역구 의원과 54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선출되었지만 이들 당선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환경전문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더 큰 걱정은 기후변화, 유류 오염, 황사, 어족 자원 보호, 환경적으로 유해한 중국산 물품의 수입 문제 등 중요한 환경 문제들이 국제적 성격을 아울러 갖고 있는데 국제적 감각을 가진 환경전문가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18대 국회에서는 대운하 문제를 놓고 여당과 야당 간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만 예상될 뿐, 정작 우리 국민을 위해 중요한 국제적 성격의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세계화·지구화는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이는 국가들이 자국 국경 안에서 배타적, 절대적, 최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에서 인위적인 영토의 존재를 알 리가 없는 어족 자원을 우리가 아무리 우리 영해 안에서 보호한들 중국 측에서 남획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계 10위권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는 적절한 경제성장과 함께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대응 수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논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국제사회의 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우리 내부 논리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다분하다.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위한 공약은 지역구 구민의 관심을 끄는 내용뿐이고,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국제환경 문제는 안중에도 없으니 국제환경 문제 전문가의 국회 진출이 어렵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내적인 관점에서 대부분의 후보자가 결정되었다.

국회의 조직을 살피더라도 입법활동의 가장 큰 중심이 되는 17개 상임위원회 중 국제적인 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위원회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국제환경 문제가 다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환경노동위원회의 그간의 활동내역을 보면 대운하 문제의 격전지가 될 것으로 생각될 뿐 국제환경 문제가 주요 문제로 다뤄질 것 같지 않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경우도 해양의 여러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해양수산부까지 해체된 마당에 해양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룰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환경 문제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바로 우리와 우리 미래 세대의 생존 문제다. 제18대 국회가 이 점을 인식하고 국제적 성격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서해 해양환경 보호를 위해 국제기구가 주최하고 우리와 중국의 입법부가 참여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영어가 회의의 공식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의원 중 한 명이 갑자기 우리말로 발언하여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당시 회의 개최지인 중국 측의 의원들도 회의 운영기준을 존중하면서 영어로 발언했는데, 이런 우리 국회의원의 행동은 우리 언어의 우월성과 자주성을 강조한다기보다 국수주의적 행동이자 회의의 기본 매너도 모르는 행동으로 비쳐질 뿐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진정으로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국제회의 참가 전에 더 많은 준비를 하고 한·중 의회 간에 실질적 협력을 통해 서해 환경보호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국회의원들이 외국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해외활동을 벌여 왔다. 하지만 우리 국민과 우리 미래의 자손들의 삶의 터전인 금수강산 한반도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국제적 성격의 환경 문제 해결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누가 어떤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5월 개원을 앞둔 18대 국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의원 개인의 차원에서나 국회 조직 전체의 차원에서나 국제화를 통한 환경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 합당한 노력을 경주, 낙제가 예상되는 성적표를 100점으로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국제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