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景福宮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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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돌기둥 하나,석수(石獸)한마리에도 그 의미를 부여했던 우리의선인(先人)들이 새 왕조(王朝)를 열어 국가와 왕실의 상징인 정궁(正宮)을 건립하고 이름을 붙임에 각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을 리 없다.이름마다 나라와 왕실의 무궁한 번영 과 군왕으로서지켜야 할 바를 담고 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4년,태조는 한양에 새로 지은 궁궐에 군신을 모아 잔치를 열고 신궁(新宮)과 대소 전각의 이름을 지어 올리게 했다.
당시 개혁의 핵심인물 정도전(鄭道傳)이 명명작업을 주도했다.
신궁의 명칭은 경복궁(景福宮)으로 했다.여기서 경(景)은「크다(大)」는 뜻이다.「술도 이미 취하였고 은덕도 흠뻑 받았도다.
임이여,만년토록 큰 복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시경(詩經)』대아(大雅)편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경복궁의 정문은 남쪽의 광화문(光化門)이다.창건 당시는 사정문(四正門)이라 이름했으나 세종(世宗)때 집현전의 주창(主唱)으로 광화문으로 바꾸었다.사정문이란 이름을 통해 참언(讒言)과 거짓이 발붙이지 못하고 나라의 정령(政令)에 사 (邪)되고 치우친 것이 없도록 스스로 경계했다.
광화문이란 명칭은「빛이 나라 밖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光被四表 化及萬方)」는 것을 의미한다.새 왕조가 완전히기틀을 잡고 개혁의 기운이 가장 왕성했던 시절,집권세력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이름이다.
경복궁의 정전(正殿)은 근정전(勤政殿)이다.정사(政事)의 근본이 부지런함에 있음을 깨우치고 교만과 탐욕에 빠지지 말 것을경계하고 있다.정도전은 근정전에 담긴 이러한 뜻을 설명하면서도부지런함,그 자체만을 위해 부지런한 것은 번거 로움과 까다로움으로 흘러 오히려 보잘 것이 없게될 뿐이라는 경계의 말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일제는 바로 이런 장소에 총독부 건물을 세움으로써 경복궁이 갖고 있던 모든 상징성들을 철저히 파쇄(破碎)코자 했다.
광복 50돌을 맞아 식민지배의 상징적 잔재이자 지난 70년동안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해체가 시작됐다.경복궁의 복원작업도 본격화된다.그러나 전각의 복원과 함께 서로의 교만과 탐욕을 경계하고 새로운 정치를 펴려 했던,경복궁 창건 당시의 포부와 의지도 복원됐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때로는 역겹기까지 한 요즘의 정치 상황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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