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19) 친일파라는 말에 곰곰이 빠져 있던 지상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 『자다가 일어나서 남의 다리 긁는다더니,너 찾아온 그 일본여자랑은 어떤 사이냐 그말이다.』 『사이는 무슨사이.그냥 아는 사람이지.』 『내 눈이 척하면 삼천리다.나는 못 속이니까 미리 이실직고를 하는 게 좋을 거다.너 돌부처가 살찌고 마르고 하는 게 다 누구에게 달렸는지 알아?』 『돌부처도 살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든.』 『그럼,물론이지.부처님이 살찌고 말고는 다 석수 손에 달린거야.』 『듣자 하니 뼈 있는 소리다.내가 그러니까 네 손안에 들었다는 거 아니냐.』 『모르면 약이고.』 건너편으로 번듯한 석조건물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길남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 잠깐 다녀올 데가 있으니까.넌 여기서 좀 기다려.아무리생각해도 오늘은 나 혼자 갔다오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인부들의 부식 수령을 하러 가는 것으로 알고 따라 나섰던 지상이었다.고개를 끄덕이는 지상을 남겨 놓고 길남 혼자 길을 건너갔다.길남이 건너 간 길게 휘어돌아간 철길을 전차가 기우뚱거리듯지나갔다.
길남이 석조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지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그늘을 찾아 옆 건물로 다가가다가 보니 뒤쪽으로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그 개울에 놓여진 돌다리의아담한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개울을 따라 이층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벼랑을 이루듯 이어지고 있었다.돌다리.미치코가 그런 말을했었지.지금 살고 있는 집 옆에 아주 예쁜 돌다리가 있노라고.
지상은 돌다리로 걸어가 난간을 잡고 섰다.다리는 가운데가 높아지면서 활처럼 휜 모습으로 개울 위에 세워져 있었다.다리라면늘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는 것에만 눈이 익었던 지상이었다.멋을 낸 건가,아니면 그럴 무슨 이유라도 있어서였 나.다리 밑을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서서 지상은 미치코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먹는 건 어때요.언제 우리 집에라도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뭔가 해 드릴 수 있을지도모르니까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